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128】

백발을 보면 허무함을 느낀다. 무엇을 하면서 이렇게 늙었단 말인가 하고 지난 시간을 후회한다. 흰 머리를 원망한다. 주검을 향해 한 걸음 두 걸음 걸어가고 있다는 허무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요즘은 죽음 연습도 한다고 한다. 수의(壽衣)도 입어보고, 관(棺)에도 들어가 보는 이른 바 죽음체험이다. 그렇더라도 시인은 백발을 보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백발도 주검과 함께 하여 북망산에 갈 거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白髮自嘲(백발자조) / 침우당 장지완
늙은 증표 하얀 머리 남들은 싫어하나
한참 보면 잠시 머문 신선 같지 않더이까
북망산 같이 갈 흰 머리 살아왔던 흔적인걸.
人憎髮白我還憐 久視猶成小住仙
인증발백아환련 구시유성소주선
回首幾人能到此 黑頭爭去北邙阡
회수기인능도차 흑두쟁거북망천

검은 머리도 다투며 북망산천 가네(白髮自嘲)로 제목을 붙여본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침우당(枕雨堂) 장지완(張之琓:1806~1858)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남들은 하얀 머리 싫어해도 나는 좋다네 / 한참 보면 잠시 머무는 신선 같지 않더이까 // 둘러보면 그 몇이나 이 때까지 살았던가 / 검은 머리도 다투어 북망산천 같이 갈 것을]이라 번역된다.

시제를 직역하면 [흰 머리 보고 스스로 웃네]로 번역해 본다. 하얀 머리를 보면서 시상을 떠올리고 있다. 다른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것은 백발이 자라나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인생의 후회와 회한이 젖는 것이 보통인데 이 작품은 그 반대의 현상을 보인데서 시적 배경이 되고 있다.

그렇듯이 시인은 첫 구절부터 자신이 범상하지 않은 사람임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거울을 보는 다른 사람들은 다 백발을 싫어하지만 자기만은 좋아한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인은 백발이 신선 같다는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화자는 자신이 백발이 되도록 오래 살았음을 자신만만해 하고 있다. 백발은 물론 흑발인 검은 머리도 다투어서 북망산에 갈 것이라는 시상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백발은 당연히 북망산을 같이 가겠지만, 어려서부터 검은 머리까지도 언젠가는 같이 가야 할 북망산 길에 동행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밝히고 있다는데서 시상의 탁월함을 찾게 된다.

작가는[1권 2장 外 참조] 침우당(枕雨堂) 장지완(張之琓:1806~1858)으로 조선 후기의 학자다. 이학서(李鶴棲)의 문인으로 1825년(을유) 식년시(式年試)에 장원으로 합격했으나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김초암(金初菴)과 홍직필(洪直弼)에게서 성리학을 배웠다.

【한자와 어구】
憎: 미워하다. 還憐: 도리어 사랑하다. 久視: 늙지 않고 오래 삶. 小住仙: 인간 세상에 잠시 머물러 산다는 신선. // 回首: 머리를 두르고 돌아보다. 幾人: 몇 사람. 到此: 지금까지 살다. 黑頭爭: 검은 머리가 다투다. 去: 가다. 죽다. 北邙阡: 북망산. 예전의 공동묘지나, 결국 ‘죽는다’는 뜻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 한국문인협회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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