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123】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다. 흔히 쓰임직하고 짤막한 이 한마디에는 많은 교훈이 들어있음을 알게 한다. 속고 죽이면서 소송사건이 빈번한 요즈음 되새겨 보아야 할 금언과도 같은 구절이다. 모두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데서 비롯됨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자영(自詠)이나 자탄(自嘆)과 같은 어구는 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한다. 혹은 반성하려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스스로를 탄식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自詠(자영) / 추강 남효온
근심과 심약한 병 지난 날 배(倍)가 되고
장안의 물건 값 올라 이 일을 어쩔거나
여종이 물병을 들고 와 눈물만을 길러오네.
愁來謁病倍平昔 其奈長安水價增
수래알병배평석 기내장안수가증
病婢持甁枯井上 日看雙淚自成永
병비지병고정상 일간쌍루자성영

장안의 물 값이 올라가니 어찌할거나(自詠)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1454∼1492)이다.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죽림거사를 자처하고 노장(老莊)의 이론을 높이 여겼다. 사회적인 체제와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방외인문학의 입장에 섰다. 그러나 학설의 입론은 주자학의 이기론에 근거를 두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근심과 병이 지난 날의 배가 되고 / 장안의 물값이 올라가니 어찌할거나 / 병든 여종은 마른 우물로 물병을 갖고와 / 두 줄기 눈물이 길어짐을 날마다 보았네]라는 시상이다. 이 시제는 [자신을 읊음]으로 번역된다. 스승 김종직이 세조 왕위찬탈을 빗대어 지은 [조의제문]이 문제가 되어 무오사화가 일어났을 때 남효온은 사후에 시국을 비방한 김종직의 문인으로 지목된다. 고양에 있던 묘가 파헤쳐지고 시체는 양화도(楊花渡) 나룻가에 버려지면서 아들 충서도 사형을 당하는 불운을 겪는다.

시인이 걸었던 길이 험란했듯 이 시문도 어려운 삶의 한 모습을 보인다.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있을 때 지은 것으로 보인다. 근심과 병은 날로 더하는데 따라서 물가도 배로 뛰고 있다고 깊은 한숨을 쉰다. 당시의 물가도 시세에 따라 많은 진폭이 있었던 것 같다.

화자는 병든 여종이 물병을 갖고 나와 물을 깃는데 날마다 두 줄기 눈물이 물병 속으로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음을 그려 내고 있다. 이를 본 화자의 쓰린 가슴을 쓸어안아야 했을 것이다. 타고난 운명은 어찌할 수 없었던지 살아서나 죽어서나 모진 고통을 감내하는 한 단면을 본다.

【한자와 어구】
愁來: 근심이 오다. 謁病: 병이 아뢰다. 倍平昔: 지난 날의 배가 되다. 其奈: 그 어찌 할 거나. 長安: 장안. 한양을 뜻함. 水價: 물값. 增: 올라가다. // 病婢: 병든 여종. 持甁枯: 마른 물명을 가지고 온다. 井上: 샘 위로. 日看: 날마다 보이다. 雙淚: 두 줄기 눈물. 自成永: 스스로 오래 이루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 한국문인협회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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