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122】

지루한 임진왜란이 끝나고 평정을 되찾을 무렵 선조왕은 서산대사를 불러 위로의 말씀을 나누었다. 못하는 곡차(穀茶) 한 잔에 주흥이 익어갈 무렵 선조는 즉석에서 죽화 한 점을 쳐 주었다. 그리고 비상의 날개를 펴는 시 한 수를 지어 화제로 써 주었다. 그리고는 정중히 대사에게 즉석 화답을 요청했다. 서산대사라고 어디 그 청을 뿌리칠 수가 있었으랴. 대사가 날렵한 일필휘호를 휘둘러가면서 즉석에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解脫詩(해탈시) / 서산대사 휴정
삶이란 한조각의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조각의 구름이 없어짐이니
구름은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삶은 다 같네.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부운자체본무실 생사거래역여연

죽음이란 한조각 구름이 없어짐이오(解脫詩)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1520~1604)으로 조선 중기의 고승이자 승장(僧將)이다. 임진왜란이 끝나자 도의의 이름이 더욱 높았으며 풍악(楓岳)·두류(頭流)·묘향(妙香) 등의 산으로 왕래하니 따르는 제자가 천여 명이요, 출세한 제자만도 70여명에 이르렀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삷이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오 / 죽음이란 한조각 구름이 없어짐이오 //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것 / 죽고 살고 오고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고뇌로부터의 해방하는 시]로 번역된다. 삶에 대한 고뇌와 죽음에 대한 그의 달관하는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삶과 죽음은 한 조각의 구름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생을 초월하는 죽음은 당연하게 받아야 한다는 초연함을 보이려는 데서 일으키는 시심이다. 시인은 삶이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죽음 또한 한조각 구름이 일어났다가 없어짐과 같다고 했다. 수억겁의 세월이 지나오면서 우주의 전체적인 원리로 보아 사람이 사는 것이란 번갯불 한 번 번쩍거리는 그런 순간에 빗대고 있음을 보이는 시심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초연한 생각에 따라 시심에 취한 화자는 인간은 순간에 왔다가 순간에 가는 것을 구름에 빗대고 있다. 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죽고 사는 것도 모두가 한 조각의 구름처럼 실체가 없이 왔다 사라짐을 법리에 근거한 법문과 같은 시상이다. 큰 스님의 화답시를 본다.

【한자와 어구】
生也: 삶이란. 一片: 한 조각. 浮雲: 뜬 구름 起: 일어나다. 死也: 죽음이란. 浮雲: 뜬 구름. 滅: 없어지다. // 浮雲: 뜬 그름. 自體: 자체. 본래. 本: 근본. 본시. 無實: 실체가 없다. 生死: (사람이) 살고 죽는 것. 去來: (사람이) 가고 오는 것. 亦: 또한. 如然: 위와 같다. 같은 이치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 한국문인협회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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