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120】

다산이 떠난 지 180여년이다. 그는 발전된 현대 사회를 예견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는 군주 사회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인권을 중요시한 현대사회를 예견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관을 중요시하는 현대사회를 예견하고 통철하게 질타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혼자 소리 높이 “나약한 인간들이여! 왜 그리 바쁘던가. 모두 다 정해져 있는 것을”하면서… 이렇게 웃으면서 오언 고시풍으로 읊었던 셋째수를 번안해 본다.

獨笑(독소)[3] / 다산 정약용
보름달 홀로 뜨면 구름은 자주 끼고
예쁜 꽃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 대지
세상일 다 그런 거야, 웃는 까닭 바로 이거야.
月滿頻値雲 花開風誤之
월만빈치운 화개풍오지
物物盡如此 獨笑無人知
물물진여차 독소무인지

홀로 웃다(獨笑)로 번역해본 장율(長律)인 세 번째 구 오언배율이다. 작자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으로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인 마현으로 돌아온 것은 그의 나이 57세 때였다. 귀양에서 풀려나서 75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고향인 마현에서 [경세유표]․ [목민심서]․[흠흠신서] 등 경세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의 실학사상을 집대성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보름달 뜨면 구름 자주 끼고 /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대지 // 세상일이란 모두 이런 거야 / 나 홀로 웃는 까닭 아는 이 없을걸]라는 시상이다.

이어진 다산사상은 다음과 같다. 넷째는 경세학의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사상을 강조한다. 다섯째는 관이 아니라 민이 근본이 되어야 된다고 역설한다. 여섯째는 기술을 개발하여 백성을 편하고 넉넉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함을 실토한다. 모두 현대사회에도 맞는 이야기다.

시인은 밝은 보름달이 떠오르면 시샘이라도 하듯이 구름이 낀다고 했고, 꽃이 화들짝 피면 어리광이라도 부리듯이 바람이 불어댄다고 했다. 자연의 시샘에 앙달을 부리고 싶은 심술쟁이를 만난다. 화자는 세상일이란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심술 심보를 토로하게 된다. 그래서 화자는 어이없는 세상사를 보면서 웃고 있는 거라고 실토하고 있다.

서론격인 첫째 구에서 시인이 읊은 시심은 [양식 많은 집엔 자식이 귀하고 / 아들 많은 집엔 굶주림이 있으며 //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 재주 있는 인재는 재주 펼 길 없으며]라고 쏟아냈다. 조화 속의 부조화를 발견해 내듯이 잘도 찾아냈다.

【한자와 어구】
月滿: 달이 가득차다. 보름달이 뜨다. 頻: 자주. 値雲: 구름을 만나다. 花開: 꽃이 피다. 風誤之: 바람이 그르치게 하다. [之]는 지시대명사 // 物物: 세상의 모든 일. 盡: 모두. 다. 如此: 이와 같다. 獨笑: 홀로 웃는다. 無人知: (그 까닭을) 아는 사람이 없을거야. 사람들은 모르겠지.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 한국문인협회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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