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어제 서울은 꽤 춥다. 오랜만에 날씨가 제 계절을 찾았다.

오늘 아침 아들을 위해 맛있는 카레라이스를 만들고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낯선 쇼핑 봉투가 있어서 확인 차 내려서 봤다. 거기엔 딸의 이름과 코 성형수술 처방전과 약봉지가 여러 개 있었다. 이어서 눈 수술 설명서도 있다. 연달아 눈까지 손 볼 심산인가 보다. 이러다 가슴까지 키운다고 할까봐 무서워진다.

무슨 까닭으로 나에겐 언급조차 안했던 것일까? 아이의 심중이 궁금해진다. 나도 가게에 나와 앉아 있으면서 아이에게 전화 해볼 엄두가 안 난다. 생각지 못한 말을 하게 될까 두려워서다. 그저 국민카드를 맡겨 두었는데 딸아이의 움직임을 택시비 결제되는 내역으로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어디에서 어디를 택시를 타고 다니느냐고 물으려다가 걷기도 힘들만큼 추운 날씨에 코며 눈이며 건드려 가뜩이나 아리고 아플 텐데 그만두자 싶어서 모른 척하고 있다.

사실 아침에 그 봉투를 보았을 때 들어오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몹시 괴로웠었다. 생각이 가지에 가지를 치고, 날개를 단 듯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무슨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았나 걱정이 되고, 수술하다 잘못되어 목숨을 잃을까 걱정되고, 여러 못된 생각들로 기가 한풀 꺾였다.

나의 스무 살을 떠올려 보니 어른들의 우려 섞인 모든 말들이 귀찮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나의 선택을 반대하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기억도 난다. 나이 들어 그때 왜 안 막았냐고 따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내 인생이 내가 걷고 싶은 길을 단 한 번도 걸을 수 없었듯이 딸아이에게 나의 생각과 나의 기준을 강요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예기치 않은 숱한 일들이 벌어지고 단 한 번의 어떤 사건에 의해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길을 걸을 수도 있는 미지의 세계이다. 그냥 못들은 척, 못 본 척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궁극적으로 좋은 선택이기를 기도해 줄 뿐이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내가 행복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행복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온화한 어머니의 태도를 지녀야 아이들 또한 안정되고 편안한 생활을 이뤄 나갈 것이다. 항상 스스로의 건강을 잘 관리하고 지켜서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나친 걱정과 성취욕으로 스스로 스트레스에 갇혀 병들지 않게 잘 지내야 한다.

2015년 한 해 나에겐 정말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성공에 대한 두려움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잔뜩 나빠진 경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지갑을 여는 것에 움츠러드는 시점에 가게 문을 열었다. 그렇지만 이 일을 생계의 수단이 아닌 즐거운 일상으로 개발하고 타인의 삶에 사랑과 건강을 가져다주는 전령사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이제 매 주 원고를 보내는 일을 쉬게 되어 그동안 헐렁한 글을 읽어 주셨던 분들에게 송구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펜을 놓습니다.”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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