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강아지가 얼굴을 핥고, 배 위로 뛰어올라 잠이 깼습니다. 웬 강아지냐구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다시는 애완견과 인연을 맺지 않거나, 적어도 집에는 들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이 강아지로 말할 것 같으면 딸아이 친구의 강아지입니다.

그 친구의 강아지가 어떻게 우리 집으로 흘러들었냐? 사연이 있습니다. 딸 친구의 어머니는 무척 성격이 예민했었나 봅니다. 그 아이는 어머니를 오래 견디다 드디어 스무 살이 되자, 훌훌 집을 나와 혼자 생활하게 되었답니다. 월세가 꽤 나가는 원룸을 구해 혼자 지내는 걸 보고 남자친구라는 아이가 강아지 두 마리를 사줬나 봅니다. 좁은 집에서 강아지랑 셋이 생활하던 중 월세를 여러 달 밀려 급기야 쫒겨날 지경에 이르렀나 봅니다.

그 사연을 듣고 나서 강아지 ‘두부’(강아지 녀석 이름이 하필이면 두부입니다. 마음에 드는 이름이 아니에요)를 보니 주인 형편 닮은 녀석의 행색과 꼬라지가 너무 가엾습니다. 첫 날은 두부의 눈에서 주인 잃은 두려움과 여기서도 쫒겨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느껴졌습니다. 눈빛에서 성성한 두려움과 애절하기 그지없는 ‘엉김’이 느껴졌습니다.

제법 눈치도 빠르고 대소변도 가립니다. 먹을 것을 보채지 않고 기다릴 줄도 알고, 처음 본 우리 가족 셋 모두에게 엄청난 애교 필살기를 펼칩니다.

딸아이는 올해 스무 살이 되었는데 저도 지난겨울 20년도 더 묵은 오랜 피로감을 털어내기 위해 아이들만 놓고 홀홀 지리산으로 들어간 적 있습니다. 저는 둘째가 스물만 되면 저만의 삶을 살겠다는 숙원을 이루기 위해 나의 온 바람을 다 담아 한 편의 시를 썼지요.

아가야, 어서 스무 살이 되렴

몇 번인가의 기억을 거슬러
이번에는 결코 실패하지 않으려
물살이 세지 않은 곳
떠내려 가지 않을 곳
숲 안 자그만 웅덩이에
도롱뇽은 아기를 낳았네
옛날의 상처 기억하며 이번에는
나뭇가지에 아기 주머니 걸어 놓았네
수면 흔드는 바람에 흘러가지 않게
엄마는 한시도 떠날 수 없었네
검은 안개 피어올라 시야 가려도
뭉근한 물웅덩이 지키려하네
아기 다리 나올 때까지는
웅덩이 밖으로 나올 때까지는

하지만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가는 스무 살이 되어도 여전히 엄마가 필요하더군요. 여전히 스타킹을 찾고, 때 묻은 블라우스 옷깃을 하얗게 만드는 방법을 모르고 스무 살 여자에게 접근하는 남자의 속성을 전혀 알지 못해서요. 다행히 딸은 친구들의 힘겨운 원룸 지키기 고군분투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스무 살 아이들의 원룸살이가 만만치 않더군요. 우리 집 도롱뇽 자주 속삭여 주더군요. 엄마, 지켜줘서 고마워요.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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