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마지막 날인 30일, 31일 이틀 동안 우리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는 지방의 성대한 문학제에 참석했습니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1980년대까지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국화옆에서’로 너무나 유명한 시인이지요. 그는 시인으로서는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는 친일,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시대에는 권력자의 편에 섰습니다. 그의 삶을 통해 문학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친일문학을 했다는 것은 반민족행위를 했다는 것이며 독재시대에 독재자를 찬양했다는 것은 천박한 가치관을 짐작케 합니다. 대부분의 친일파들이 그러하듯이 서정주 시인 또한 친일행위에 대한 진실한 반성이 없고 오로지 말장난으로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냥 솔직하게 '잘못된 행동이었다' 라고 했다면 용서될 일일지도 모르나 진솔한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이 친일파들의 묘한 공통점인 것 같습니다.

미당의 행적은 많은 국민들에게 이해되지도 아직 용서되지도 않았지만 그 분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인지라 큰 규모의 행사가 전북 부안 질마재 그의 고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저 또한 아직 시인의 시와 행적을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존경하는 교수님이 진행하는 행사인지라 기꺼이 참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금요일 토요일 이틀 동안 15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다녀간 데는 제가 보기엔 그럴만했습니다. 왜냐하면, 볼거리가 너무나 많은 행사였고 관람객의 편의를 최대한 생각한 마을 조성이 한 몫 하는 거 같았습니다.
아직 제 입장을 정리하지 않은 저는 두 가지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그의 묘에 가서 함께 간 동료들과 큰절을 한 것과 또 그의 초기시 “화사”를 만인 앞에서 낭송한 일이었습니다.

미당은 일제의 총칼이 무서워 친일행각을 저질렀고 전(前) 대통령을 찬양했으며, 광주항쟁 때 메가폰을 잡고 독재자를 대변했습니다. 우스개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 박목월은 총애를 받았지만 그는 토사구팽 신세를 겪었다는 일화를 듣습니다. 미당의 심약함, 사고의 천박함,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우주를 관통하는 절대적인 철학의 부재를 가져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큰 시인으로 추앙하고 시인 고은이 아직 미당의 시 그늘에 푹 파묻혀 있을 때 그를 가리켜 그는 또 하나의 정부라고 극찬한 적 있을 정도로 그는 하나의 고전이자 살아 있는 문학사가 된 지 오래입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는 시의 문법과 산문의 문법으로 미당의 어법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며, 미당의 어법은 미당의 인간 자체라고 평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지상을 가득 채우는 그의 친일 행각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시의 언어로 전쟁을 성스럽다고 꾸미고 또한 조선 청년들에게 일본을 위한 전쟁에 나가서 싸우다 죽을 것을 강권한 그의 모진 행위와 모병을 장려하는 기교적인 글들이 주는 고통에서 저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가 일제 말기에 그 눈부신 시적 재능을 일제 찬양과 황국신민화 정책의 선전에 기꺼이 쏟아 부었던 그 행위를 어떻게 아름다운 시어들로 모두 덮어버리려 할까요? 우리가 그럴 수가 있을까요?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저작권자 © 홍천뉴스 / 홍천신문 홍천지역대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