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소카페를 문 연 뒤로 일상에 커다란 변화가 왔다. 학교생활도 겨우 유지하고, 매주 수요일에 가는 유심 시 창작 수업도 한 달 내내 못가고 말았다. 급기야 존경하는 은사님이 다니러 오셨다. 그 마음의 깊이에 얼마나 기쁘고 설레던지!

함께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스승님의 무한한 배려와 사랑에 무한 에너지가 솟았다. 그런데 요즘 나는 걸핏하면 넘어지기 일쑤다. 마음이 급해져 빨리 다니다가 발이 엇갈려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급기야 지난 토요일 급히 지방에 내려갈 일이 생겨 지하철로 움직이다가 계단을 구르고 말았다. 하이힐 앵글부츠가 계단 철제에 걸려 아래로 쭈르륵 미끄러졌다. 손에 쥔 핸드폰이 달아나고 무거운 가방도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그 모양을 지켜보게 된 행인들이 어머머 어떡해를 연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려고 했는데 뱃속이 뒤틀렸는지 아프고 손발이랑 어깨랑 무릎 장딴지가 일제히 아팠다. 그래도 강변터미널에서 7시 차를 타야만 해서 벌떡 일어나 뛰려고 했는데 몸이 말을 안 들었다. 그때 지나가는 생각들,......

언제나 나는 바빴다는 거. 질 수 있는 짐보다 항상 많이 지고 일어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택하거나 혹은 피하지 못한다는 거. 이렇게 살다가 갑자기 비명횡사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나는 이렇게 내 삶에 진지하지 못할까? 깊은 자책이 밀려왔다. 앞으로의 내 삶을 선택할 때 신중하게 판단하고 처신해야겠다는 깨달음이 두 번 콘크리트 바닥에 나뒹굴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어제 대학원 선배들과 맥주를 마시러 갔다. 선배지만 나보다 3기수 높은 또래 친구가 나를 칭하기를 항상 분주하다고 웃었다. 지각을 밥 먹듯이 하고 하이힐 또각또각 걸어오는 소리도 분주하단다. 강의실 들어와서도 가방 안을 뒤지고 화장실을 분주히 다녀오고 얼굴이나 입술에 뭔가를 바르고, 분주히 코트나 스카프를 벗어젖힌 댄다. 책은 안 가져오기 일쑤고, 과제물도 대충 베껴 오고, 언제나 허둥지둥 천방지방이다. 와~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원은 왜 다니나 모르겠다. 머릿속이 새로운 지식으로 채워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들러리 인생을 살고 있다.

이쯤에서 더 이상의 우를 범하는 건 안 된다. 일단 이 분주함을 제거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늘 그렇게 살아왔듯이 또 계속해서 삶의 끝까지 이렇게 가는 건 안 된다. 이 분주함이 어디에서 왔는가? 곰곰이 되짚어 보니 주변인들의 마음에 전부 들기 위해서 발악하는 나의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내 위주로 살지 않고 나 아닌 타인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내 시간을 희생하는 태도에서 수많은 문제가 불거져 나온다. 자신만을 위한 시간과 노력과 투자도 분명 굉장히 중요하고, 또 내 생활을 잘 해내야만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도 않게 되는 이치를 간과한 것이다.

이제 조금 깨달았으니, 오늘부터는 절대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 많은 곳에서,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부스럭 부스럭 꺼내지도 않을 것이다.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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