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뜰 효소카페를 내니 전국의 산을 헤집고 다니시며 약초뿌리를 캐 오셔서 술과 효소만 20년 이상 담근 분이 계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시간을 내어 그분을 뵈러 갔다. 그분이 가지고 있으신 발효액 중에 오래되고 좋은 게 있으면 가져다 팔아야지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찾아 나섰다.

막상 노인을 만나보니 상황은 급반전이었다. 그분이 거처하는 곳으로 가는 길 곳곳이 아파트 건설현장이었다. 그분은 벌써 20여 년 가까이 국유지 위의 지상건물에 살고 계신다 했다. 그 건물은 전부터 권리금만으로 거래되어왔던 것이었다 한다. 그분은 천이삼백 평 가까운 공터에 오미자도 심고 복분자도 심고 산에서 캐 오신 달래도 심고 커다란 개도 두 마리 키우시며 터를 잡고 살아오셨다.

그런데 두 달 전 앞으로 1년 이내에 집을 비우라는 계고장을 받은 것이었다. 노인은 살아온 세월의 깊이만큼 상처가 깊었다. 여자 부모의 반대로 혼인신고도 못하고 4년 동안 함께 살았던 여인에게서 아들 둘을 얻었다. 유난히 착하고 성실했던 둘째 아들은 2003년 서울대학에 합격했다고 한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밤 아들은 성인 흉내를 내었던 것일까?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운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첫째아들은 아버지의 어려운 형편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발효액과 약술에만 관심 있었다 한다. 이후로 서로의 의견이 갈려 지금은 의절한 채 남보다 못하게 살아간다고 한다.

그는 국가의 정책에 분노하고, 권리금으로만 거래되던 이 집이 자기 대에 와서 빈손만 털고 가야 한다고 분노하고 절망했다. 가끔씩 걸려든 여자들이 결국엔 자기 계산으로 금전적 피해를 입히고 갔다 싶으면 그녀들에 대해서도 역시 원망하였다. 사회를 원망하고, 자식을 원망하고, 헤어진 여인들을 원망하느라 그의 눈빛은 성성하였다. 당신은 하루도 빼지 않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데, 묘하게 간과 폐는 멀쩡하고 심장의 사용 용량이 30%밖에 안 남았단다.

25년을 하루가 멀다 산 속 깊숙이 들어가 약초를 캐고, 나물을 뜯고, 버섯을 따 올린 그의 폐와 간은 오래된 끽연에도 산 속 피톤치드가 정화시킨 것인지 아직 분노의 결김이 제법 빳빳하시다. 그의 분노와 마주 서면 그라는 사람을 이해할 것 같다. 그를 휴머니티로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왜 서둘러 그를 떠났는지를 이해할 거 같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자기애가 너무 강해서 온몸에 쐐기풀을 감고 있다. 외롭다 절규하면서 독 없는 쐐기풀을 휘감고 있다. 결국 그의 외로움은 그의 책임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럼에도 그는 현재 생활의 근거지를 잃어야 하는 고통에 싸여 있다. 그에게 다른 대안은 있다. 75년 파월 장병이라 아파트도 나올 수 있고 생활비 연금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거칠 것 없는 노지에서 이거 저거 심어 먹고, 산으로 들로 휘 돌아 다니며 강물처럼 살고 싶은 것이다. 그가 강물처럼 바람처럼 새처럼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이 마음 간절하다.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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