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한 중간, 드디어 서초동의 오래된 상가 1층에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벽 한 면이 환한 유리창으로 이루어진 예쁜 효소 카페. 쉰을 넘기고도 처녀 같은 몸매를 지닌 아름다운 중년 언니들이 줄을 잇고 들어섭니다. 햇살이 테이블 위에 머무르고 와인 글래스에 산머루 발효액을 야금야금 마시며 언니들은 소녀가 된 듯 까르르 웃으며 단란한 시간을 가집니다.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습니다. 돈도 많이 벌고, 언니들에게도 편안한 공간을 드리고. 저도 쾌활한 대화에 덩달아 즐겁습니다.

그러나 처음 문을 열던 수요일은 정말 제 생애 최고의 고난이었다고나 할까요? 지리산에서 트럭을 타고 올라 온 발효액 박스가 25개. 산나물 박스, 곡물 박스, 꿀 박스가 100개. 방산시장에서 달려 온 포장 박스. 남대문 시장에서 달려 온 유리 컵 셋트. 아, 입을 떡 벌린 채 아연실색했지요.

그 때 나타난 천사. 오늘 아침 하늘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천사가 가게로 나타나셨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옆집 목사님 사모님이 제 당황한 얼굴을 보셨겠지요. 한숨을 하염없이 쉬고 있는데, 혹시 시간이 나면 들를 수도 있으시다며 주소를 달라 하셨겠지요. 가게에 당도한 저는 너무나 당황하였고, 아무것도 감을 잡지 못한 채 망연자실 서 있었습니다.

그 때 등 뒤에서 어깨를 툭 치시는 나의 사모님.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수많은 박스들의 배를 척척 갈라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시는 그 손놀림과 순간적인 판단력에 놀랐습니다. 미안하고 감사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몰려 왔습니다.

오후 5시, 손님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려 왔습니다. 모두들 축하의 화분과 하얀 돈봉투,.....저는 지하 1층 뷔페 식당에 손님들을 분산시키고 카페에선 무료 시음을 시켜드렸습니다. 너무나 당황스러웠던 개업식은 무사히 끝나고 다음날 사모님은 코피를 흘리셨습니다. 힘들어서가 아니고 나이 탓이라고 오히려 저를 위로하시는 사모님.

사실 사모님이라 부르는 것을 극구 반대하시며 동네 언니 옆집 언니라 불러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시지만 그분의 인품 때문에 그렇게 쉽게 언니라 불러지지 않습니다. 옆집 언니는 목요일도 오셔서 고사리 포장이며 꿀포장 고추장 포장을 당신께서 척척 알아서 다 해주시고 설거지며 바닥 청소며 다 알아서 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손님에게도 들어와서 차 한잔 하세요 하며 손님 힛빠리(유인)도 하십니다.

제 좁은 생각으로 일당이랍시고 5만원과 도라지 가루라도 드릴라 했더니 노여움이 하늘을 찌르십니다. 당신의 봉사를 돈으로 계산해 주면 하나님의 심부름을 돈 받고 한 거라 하시면서요. 카페에 손님이 마구 몰려오는 건 옆집언니의 간절하고 깊은 기도 덕분인 거를 의심할 수 없네요.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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