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여름 숲은 무척 소란해요. 예의 진도견 두 마리를 데리고 큰 절에서 작은 암자로 난 숲길을 걸었어요. 사방에서 토도독 토도독 작은 탄성 같은 소리들이 나서 궁금했어요. 가던 발걸음 멈추고 소리의 정체에 몰입했지요. 아 그것은 물방울의 비명이었습니다. 어제 오후 갑자기 국지적으로 소나기가 쏟아졌는데요, 글쎄 밤새 잎새에 머무르다 쨍한 아침햇살에 몇 분 반항도 못해보고 여기저기서 연이어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물방울의 비명이었어요. 아~악 숲길로 떨어지는 물방울.

저 만큼 앞서가던 두 마리 강아지가 시속 80킬로로 숲으로 달려갑니다. 나도 20킬로로 달려가 보니 어린 산토끼 한마리가 눈을 연신 꿈벅거리고 배를 할딱거리며 서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작고 가는 다리와 배에서 핏물이 비칩니다. 토끼의 배에는 강아지들의 더운 침과 입김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이럴 때 야단을 쳐야하나 칭찬을 해야 하나 망설입니다. 숲에서 잡은 토끼를 숲길 한 가운데로 물고 나와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를 기대하는 아가들을 어찌 대해야 하는지 그 순간 망설여졌고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숲은 그윽한 향을 제 가슴과 폐와 콧속으로 마음껏 몰아넣어 주었습니다. 숲길 양 길가에 하얀 색 노란 색 분홍 색 작은 꽃잎의 야생화가 키가 부쩍 자라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평소 수줍음 많았을 작은 꽃잎들이 새벽에는, 가까이 다가가니 자기의 외형만큼 겸손한 향을 뿌려줍니다. 내 집 화장대 위의 어쩌다 값비싼 향수보다 더 은은하고 그윽한 자연의 향수, 넋을 놓고 혼을 빼놓고 그 모습에 웅크리고 앉아 한없이 눈을 맞춥니다.

산을 내려오니, 최근에 절친한 친구가 된 약초 파는 언니가 부지런히 포장을 걷고 있습니다. 서로 반가워 인사를 나눈 뒤 아가들의 영웅담을 얘기했겠지요. 이야기를 들은 약초 언니, 펄쩍 뜁니다. 왜 그 귀한 산토끼를 그냥 놓고 왔냐고요. 그 언니는 남편 아이들과 떨어져 홀로 친정어머니와 단둘이 사시는데 여름 내 기력이 쇠해지신 어머니 드리겠다며 산토끼 가져오라고 막 조릅니다. 운동화보다 작다고 해도 어머니 고아 드리겠다고 막무가내입니다. 그 성화에 다시 숲길로 올라가 산속을 다 뒤져 죽은 토끼를 찾았어요. 얼결에 두 번씩이나 숲을 오르내렸더니, 외려 진이 다 빠져 언니의 가판대에 쓰러져 누웠습니다. 그때 큰 절을 향해 일대의 사람무리들이 몰려갑니다. 무슨 일인가고 정황을 물으니 오늘이 불교에서는 큰 행사인 백중이라 합니다. 그동안 백중 기도를 올린 불자들의 백중회항일이라 합니다. 언니의 채근으로 또 염치없이 절밥을 먹으러 갔지요. 절 마당 큰 평상에는 누렇게 익은 호박들이 일렬로 앉아 있습니다. 못생긴 그 모양이 주는 무한한 연대감과 위로에 잠시 마음을 나눕니다. 스님보다 먼저 공양 간에 들어가, 말린 나물로 만든 절밥을 서둘러 먹었습니다. 먹는 내내 어찌나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수그리고 먹습니다. 전 사실상 이 큰 절에 매일 산책하러 오지만 절 마당 약수만 떠먹고 가지 공중을 위해 보시한 적이 없습니다. 불편한 마음에 먹고 나오다가 의자를 길게 빼고 앉은 할머니 의자 발에 걸려 옆으로 철퍼덕 자빠졌습니다. 쟁반에 남은 밥알 하늘을 날고 숟가락 밥그릇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공양 간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잽싸게 슬라이딩 했지만 하나도 다치지 않은 이유는 공양 간에 숨어 계신 부처님이 커다란 팔을 벌려 저를 안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약간 얼얼한 팔꿈치와 눈곱만큼 상처 난 손으로, 먹은 그릇을 설거지 하는 동안 마음 고운 보살님 한 분이 제가 쏟은 음식물을 다 치워 주십니다. 공양 간 밖으로 나오니 하늘이 너무 멀리 올라가 버렸습니다. 하늘거리는 나무 잎새에 먼저 온 가을의 전령사들이 가을이 온다고 마구 떠드는 소리에 귀가 간지러운 오후입니다.

하늘이 높고 파랗습니다.

구름은 이불솜보다 보드랍고 곱습니다.

가을이 또 오네요~~~♧♧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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