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8월도 어느새 3분의 1이 지나가면서 불면에 시달리게 만들던 더위가 한풀 꺾이는 중이다. 한낮에 도심의 도로를 걷노라면 살갗이 불에 덴 거처럼 따갑다. 그렇게 그악스럽던 날씨가 어느새 한풀 팍하고 꺾일 때면, 세월과 시간과 강물이라는, 흐르는 것들에 대한 서러움이 목에 차오른다.

나는 가끔 나에게 닥치는 이 지독한 외로움을 이겨내는 엄청난 에너지가 바로 나를 너무나 사랑해주는 두 마리의 강아지라고 생각한다. 산길을 걷다가 갑자기 날아드는 왕벌에 놀라 악하고 비명을 지르면 광속의 스피드로 달려 와 특유의 매서운 눈빛으로 보호하려 드는 그 표정에 얼마나 위안이 되고 기쁨이 넘치는지 알지 못하실 것이다. 옥수수를 벗겨 먹는 내 행위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한 개만 달라는 표정을 지어보여서 반개만 부러뜨려서 줘 봤다. 앞발로 붙들고 알맹이를 벗겨내어 먹는 모습은 내 마음을 환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매일 마당 주변과 집주변만을 뱅뱅 도는 진돗개 두 마리가 너무 안타까워서 큰 맘 먹고 근처 암자에 올라가기로 했다. 아름답고 시원한 녹음 속을 셋이 걷다가 두 아이는 자꾸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 그동안의 질주본능을 마음껏 해소 하는 듯했다. 천천히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더니, 양동이로 물을 퍼붓는 형국의 소나기가 내리쳤다. 나는 ‘악, 어떡해!’ 입으로는 소리치면서도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전속력으로 집을 향해 물을 튀기며 질주했다. 그때 두 마리의 강아지가 한 마리는 앞에서 또 한 마리는 뒤에서 나를 엄호하듯 달리는 것이었다. 눈앞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어쩌지 못하면서도 주인인 나를 보호하는 그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인간인 나는 손이 자유로우니 눈앞을 닦으면서 뛰니 훨씬 덜 불편한데도 하얀 털옷이 온통 젖는 것에도 아랑곳 않고 나만 보호해주는 그 애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감에 몸속에서 예쁜 에너지와 호르몬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그 다음날인 일요일에도 나는 선심 쓰듯 두 아이를 데리고 암자를 향했다. 암자 가는 숲길 입구에서 하행 길 등산객 한 분이 개 데리고 다니지 말라는 충고를 하셨다가 이야기가 붙어서 그분과 나는 한참을 입구에 서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은 집에서 우리 범이(진돗개남아)와 똑같은 여아를 기르고 계셨다. 그분도 가던 길 가시고 나도 숲길을 오르려고 여자아이더러 남자아이 어디 갔느냐고 물은 뒤 발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웬걸, 여자애가 안 움직이려 든다. 이름을 부르며 갈 길을 채근해도 요지부동이다. 그때 어디선가 내 집 남자 아이의 절박하게 우는 울음소리가 숲 깊숙한 곳에서 들려온다. 순간 불길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멧돼지를 만났나? 날카로운 이빨에 받혔나? 아니면 덫에 걸렸나?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엄청나게 당혹스러웠다. 나는 재빨리 하행 길 초면의 선생님께 전화 걸었고, 한달음에 달려 오셔서 논길을 통해 숲으로 진입하셨다. 나도 당황하여 아가의 울음소리 들리는 곳으로 마구마구 달려갔다. 선생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가가 올가미에 걸렸다는 것이다. 고향이 진도이시며 진돗개에 대한 사랑이 극진하신 선생님은 앞뒤 잴 거 없이 우리 집 아가를 구하려고 팔을 뻗으셨다가 그만 극렬히 저항하는 아가에게 물리고 마셨다. 그 뒤를 쫒아간 나는 강아지 범이의 꼴을 보고 당황한 나머지 괜찮으시냐는 의례적 인사도 생략한 채 선생님의 코치를 받아 올가미를 천천히 풀어주었다. 점점 배를 조여 오는 올가미를 풀어주면서 범이의 머리를 한 손으로 쓸어주었다. 올가미에서 풀려난 강아지는 의기소침해졌다. 그 마음을 살피면서 바지와 신발이 온통 흠뻑 젖은 채로 풀숲을 빠져 나왔다. 그제서야 손가락을 꽉 쥐고 지압을 해도 피가 스며 나오는 선생님께 깨끗한 화장지를 내드렸다. 큰 병원 모시고 가서 상처를 소독 물로 씻기고 난데없는 엉덩이 주사를 한 대 맞으신 선생님과 한바탕의 추억과 뗄 수 없는 인연의 숲길에 서게 된 날이었다.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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