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소나기가 내립니다. 연두색 나뭇잎을 삽시간에 녹색으로 바꾸어버리는 놀라운 힘을 가진 여름 비. 구름조각들이 걷히고 나면 나뭇잎을 뚫을 것 같은 맑은 햇살이 산야를 맑게 비추겠지요. 초자연농법으로 도라지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식초로 약을 만들어 잡초에게 뿌려줘야 합니다. 그런데 이 비에 도라지 밭 약이 씻겨 내리면 싹은 못 올라오고, 단비에 잡초만 무성히 올라올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더 염려되는 일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린 못생긴 강아지 “꼬맹이” 의 행방입니다. 우리 집 진돗개 부부 아내 자임이가 질투를 견디지 못해 무참하게 꼬맹이를 물어뜯었습니다. 진돗개 남편 범이의 어정쩡한 태도에 앙심을 품어오던 자임이가 아침나절 응가를 하고 돌아와서는 돌돌 말려서 찾기조차 힘들게 포장 안에 깊숙이 숨어있던 꼬맹이를 기어코 찾아내어 물고 물고 또 물어 뜯어서 난자를 한 것입니다. 악을 쓰고 말리고 매로 얼러도 꼬맹이의 목을 물어 뜯고, 다리를 물어 뜯어서 한입에 물고 공격하기 좋은 곳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맹수였습니다.

저한테 과자나 얻어먹으며 꼬랑지 흔들던 애완견이 아니었습니다.

피가 낭자하고 살해의 의도가 다분했습니다. 저번 날에도 무자비한 자임이의 공격에 넘버 원 범이 방으로 숨어 든 꼬맹이를 끄집어 내 물고 있는 걸 겨우 뜯어 말린 적 있었습니다. 이후에 꼬맹이는 제가 마련해 준 작은 자기 집에서 밥 먹을 때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임이는 응가하라고 풀어주면 어김없이 꼬맹이가 숨어 있는 꼬맹이 작은집에서도 끌어 내 마구 마구 물어 뜯었습니다.

원래 이 집엔 꼬맹이가 먼저 살고 있었습니다. 이집은 사무실로 사용되었고, 이 곳 회사에 다녔다는 꼬맹이의 주인 M 씨. 그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회사가 해산되고 제주로 떠나면서 빈 집에 홀로 남게 된 꼬맹이.

강아지는 주인을 기다리며 1년 가까이 생명을 지키며, 척박한 현실을 견디었습니다.

제주에 간 M씨는 갑자기 큰 병을 얻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꼬맹이를 돌 볼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올 2월, 그는 세상을 떠났고, 강아지는 여전히 거기 그 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립니다. 진돗개 부부가 이사를 들어와도 여전히 꼬맹이에게는 자기 집인 것입니다.

그간 사정을 파악한 우리는 꼬맹이를 거두었고, 늘 줄행랑치던 강아지가 6월부터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주인의 관심이 분산되고, 남편 범이의 눈길이 분산되자, 게다가 서열을 무시하는 나이 든 꼬맹이에 대한 자임이의 응징은 살벌하다못해 끔찍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꼬맹이 정말 멀리 떠난 거 같습니다.

빗발이 거세집니다.

어디에서 비를 피하고 무엇을 주워먹고 목숨을 연명하려는지.

주인의 비보를 꼬맹이에게 전할 길이 없어 답답합니다. 주인은 고통이 없는 곳으로 갔다고 전해주고 싶습니다. 하늘에 가 있을 M씨도 이렇게 자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꼬맹이를 바라본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다정했을 주인 대신 밥과 물을 주고 비를 피할 잠자리를 주고 싶은데, 어린 나이에 아기를 갖게 되어버린 자임이가 허락하지 않네요. 아마 태어날 자식들이 다칠까 미리 염려하나 봅니다.

꼬맹이의 주인이었던 M의 어머니께 강아지를 전해주는 일도 너무 가혹한 일이겠지요?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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