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우리네 인생사도 반복되는 현상을 체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중국 북경대학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하며 동시에 파견교수로 강의를 하던 시절 2003년 소위 ‘사스사태’를 경험한 바 있다. 그 후 12년 만에 한국에서 유사한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그 때와 현재를 비교해본다.

갑자기 불어닥친 사스사태

2002년 말부터 생소한 ‘사스’라는 병명이 중국 남쪽에서부터 들리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그냥 먼 나라 남의 일만 같았다. 그러나 2003년 초 북경에서도 사스가 발병되었고 중국전역을 넘어 전 지구촌을 흔들기 시작했다. 수업은 중단되었고 학교는 곧바로 휴교령을 내렸다. 각 단위 간 왕래가 통제되었고 학교는 물론 북경시 전체가 경직되고 가라앉았다.

위험한 현실보다 두려움에 대한 공포심이 더 큰 문제

모두가 처음 듣는 병명과 동시에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사스공포’에 모두가 놀라고 당황했다. 겁먹은 얼굴로 공포에 떠는 모습이 역력했다. 온갖 헛소문이 돌기시작하면서 공포감은 더욱 가중되었다. 웃지 못할 일도 연달아 일어났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환풍이 잘 되어서 좋다”고 한사람이 말하면 추운 겨울에도 모든 창문이 집집마다 동시에 열리고 반대로 “닫아야만 균이 못 들어와 안전하다”고 발표하면 한순간에 모든 창문이 닫혔다. “한국에서 사스가 발병하지 않은 것은 김치 때문”이라고 하자 모든 상점의 김치가 동이 나기도 했다. 정확한 정보와 이해가 없고 안 될 때 그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실제의 위험한 상황보다 두려움에서 오는 공포감이 더 문제였음을 기억한다.

문제와 사태에 따라서 정확한 대응방안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중국정부도 초기에는 당황하고 흔들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곧바로 대응했고 적극적으로 해결에 임했다. 첫째, 감염자의 증세와 대처방안을 국민에게 홍보했고 둘째, 감염자와 의심환자를 즉각 격리했으며 일반인들에 대한 왕래를 적극적으로 통제했다. 셋째, 국가의 주석과 총리 등 당국의 책임자들이 현지와 현장을 직접 방문하면서 사태해결에 능동적으로 대처했다. 넷째, 감염환자 4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사스전문병원’을 일주일 만에 수많은 인원을 동원해 건설하고 환자를 집중관리하며 치료했다. 다섯째, ‘사스사태’가 종결되었음을 선포하면서 당국의 초기대응 잘못을 사과했고 의료진들에 대한 노고를 치하하고 희생정신을 기렸다.

차후를 대비한 항구적 대책이 필요하다

필자도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보충강의를 위해서 다시 중국으로 갔다. 도착하자마자 일주일동안 학교 호텔방에 격리된 상태에서 음성판정을 받고서야 강의를 했다. 그 뒤로 그들이 일주일 만에 지었다는 사스병원을 방문해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펑번병원을 관리하고 있었다. 지금 메르스상황을 맞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떠한가. 상부는 지시와 명령만 할뿐 현지와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책임자도 없다. 정부와 국민이 함께 정보를 공유하면서 협조해야함에도 차단된 정보 때문에 국민 불안만 키우고 있지 않는가. 세월호 때처럼 우왕좌왕해서는 안 된다. 지시와 명령, 남의 탓만을 할 것이 아니라 최고 책임자가 직접 나설 때가 되었다. 그래야만 나라가 하나가 되고 사태가 수습될 수 있다고 본다. 중국에서의 경험으로 볼 때!

조일현
현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전 홍천횡성지역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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