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서울 하늘은 흐리다. 일주일 정도 후면 석가 탄신일이다.

“크리스마스에 내리는 눈하고 사월 초파일에 내리는 눈하고 어떤 게 더 시적이야?”

하고 시우가 물었다. 그러자 나이 지긋하신 시우가 1972년 당신이 고등학교 시절에 실제로도 사월 초파일에 눈이 내렸단다. 그날은 “하복”을 처음 입는 날이었다 한다. 갑자기 내리는 눈으로 반팔 상의에 얇은 여름바지를 입은 학생들은 아우성을 쳤다고 한다.

그 틈에 말안듣는 불량학생들은 겨울 동복을 입고 와서 그날 하루 따뜻하게 보냈고 모범생 아이들은 처박혀 있던 “교련복”을 찾아 허둥지둥 했다한다.

어제 무심코 지내다 내 딸이 스무 살이 된 거는 기억하지만, 어제가 “성년의 날”이란 걸 기억 못했다. 아이가 카톡으로 “흥, 흥” 연발이다.

듣자하니 성년의 날엔 장미 스무 송이와 향수와 케익과 키쓰 이 네 가지를 주고 받아야 하는 날이란다. 학교 수업을 마치니 10시가 넘었다. 급히 지하철을 타고 흑석역에 내리니, “왓슨”이라는 화장품 매장에서 향수를 45% 할인행사 한다고 아르바이트 남학생이 매장 밖으로 튀어나와 소리소리다. 새초롬한 딸의 목소리

“엄마 사오지 마요. 필요 없어요.”

어쩐지 목소리에 물기가 배어 있다. 자꾸 걸렸다. 서운함을 깊이 감춘 목소리를 어찌 모르겠는가? 그래, 일생에 단 한번 있는 날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도 아니고, 성년의 날과 결혼식날 만큼은 꼭 한 번 있는 날 아닌가? 거액 127000원을 주고 12개월 할부로 향수를 샀다. 역을 빠져 나와 총총 걸어오는데, 학교 동기가 전화를 걸어 와, 다른 건 몰라도 장미꽃 스무 송이를 꼭 사 주랜다. 향수를 안 사 주더라도, 케익을 못 먹더라도, ‘장미를 사자’ 꽃값을 무시하고 화원에 들어섰다. 꽃을 한 번도 받아 본 적도 사본 적도 없는 여자로서 꽃값을 알 리 만무했다. 한 송이 3000원, 6만원이라는 말에 기함했다. 꽃 집 사장과 일하는 점원이 엄청 달달한 말로 구슬려도 ‘당기시오’ 문을 막 밀며 나오려고 발버둥 쳤다.

마음 속에는 온갖 회오리 바람이 불었다. 직격탄. “5만원에 드릴게요.” 꽃을 샀다. 꽃집에서 카드도 받았다. 카드를 꽂아 무릎 꿇고 바칠 수 있는 예쁜 꼬챙이도 받았다. 그 길로 또 꽃집을 나와 유명한 베이커리를 찾았다. 너무나 다행인 것이 11시 반이 클로징 시간이었다.

딸기맛 쉬폰 케익까지 사 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가방까지 포함 해 도합 양 손에 세 개씩 들고 있어 마을 버스에서 카드기 찍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었지만, 딸 아이 활짝 웃는 그 웃음을 위하여 뭔들 못하겠는가? 나는 엄마다. 홀로 키우는 엄마다. 아빠역할까지 문제없이 해내야 하는 나는 “엄빠”다.
엘리베이터 호수를 누르는 일이 마지막 관문으로 디지털 키를 누르는 소리가 나자 집 안에서 물방울같은 목소리가 들린다.

“앙, 엄마다.”

의젓한 아들의 목소리도 섞여 있다. 문을 당길 수 없는 상태여서 온 몸으로 반달곰처럼 밀고 들어 가 손가락 하나씩 펼쳐 차례차례 물건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딸과의 깊고 그윽한 포옹. “성년 축하합니다.”라는 세 식구의 한 밤의 멜로디.

우린 오래 즐거웠고, 한참을 행복했다. 딸은 장미 다발을 수십 장 ‘사진을 찍고’, 끝내는 침대로 데려갔다. “장미야 너 먼저 자고 있어, 나 이만 닦고 올게.”

스물이 된 딸에게 펼쳐질 보랏빛 세상에 비가 내리면, 오늘처럼 나는 맑고 투명한 우산이 되기를 백 번도 천 번도 자처한다.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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