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늦은 밤 10시 무렵, 갑자기 문자 폭탄이 날아들었습니다. 낯선 번호들, 낯선 이름들. 이름은 거의 다 똑같습니다. 지은이 지연이, 은서 연서, 도희 등. 누군가 의아해서 문자메세지를 열어 보니 웬걸 모두가 꽃보다 고운 딸들입니다. 바로 제 딸 아이가 다니고 있는 대학의 같은 과 동기 여학생들입니다. 이 귀여운 꽃송이들이 한번도 안 본과 친구의 어머니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장문의 정성어린 문자들을 찍어 보냈습니다. 내 딸아이, 나원, 참. 저의 물밑 작업을 어느 새 배웠나 봅니다.

제가 혼자서 두 아이를 키워낸 에너지의 8할은 바로 이 물밑 작업이었습니다.

아들이 고3때, 저녁 먹으러 나왔다가 피시방 가서 혼이 빠진 채, 10시반까지 게임에 빠졌을 때도 그를 찾아 결코 응징하지 않았지요. 오히려 학교 기숙사 사감님의 ‘아이가 야간자습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급습 전화를 받고 당황했지만, 순간 “제가 데리고 있어요.” 응급처방을 하고 아들 찾아 온 거리를 찾아 나섰지요. 아이의 게임 아이디가 들어와 있는 피시방 앞에서 “도를 닦으며” 4시간 기다리며, 피시방비 미리 계산 해 주고 ‘음료수 빵’ 좀 카운터 알바생에게 가져다주라 부탁까지 했었지요. 게임에 빠진 울 아들 컴퓨터 앞에 온 빵 음료수 자연스럽게 먹어요. 이 물밑 작업은 즉효를 발휘 해 곧장 스스로가 깊은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더군요. 대학에 가서 큰 사건이 한번 일어났습니다. 바로 아들을 태운 제 차가 받힌 사고였습니다. 이 일로 아들은 중요한 심리학 시험에 빠지게 되었고, 중간고사에 치명적인 점수가 나왔습니다. 아들이 구제 해 달라고 몇 번을 간청했으나 모두 거절당했고 아들은 좌절했지요. 그때 아들 몰래 교수님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그간의 사정을 헤아려 달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대학생이나 된 자식 일에 나섰다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엄마인 내가 만든 사정이었으므로 제발 아들의 앞길을 막지 않게 해 달라고 간청했지요. 결과는 결론적으로 인생의 회로가 되었고, 3학년이 되어 전공설계를 하는 제 아들의 “진로”가 되었답니다. 아들은 인권 심리학을 공부하는 재원이 될 것이고 저는 물밑 지원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집 딸아이는 제 가슴의 못이었습니다. 분란과 소동이 끊이지 않는 가정환경을 만들어 주고,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며 갈팡질팡하는 부모를 보며 아이는 엄청난 진통을 앓았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상처로 커지자 아이는 집 밖으로 뛰쳐나갔고 집안의 환경을 하나도 바꾸지 않은 채, 집으로만 들어오게 하기 위해 저는 별 쇼를 다 했지요. 들어와 보면 여전히 가난이 덕지덕지 붙은 집안, 우울하고 침울한 손 위 오빠, 술로 제 인생의 비루함을 달래려 하는 엄마. 아이는 다시 뛰쳐나가기를 반복하고 다시 잡아 들어오기를 반복하면서도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 라는 말만큼은 수없이 했습니다. 학교를 다닐 수 없을 만큼 수업일수가 모자라지려 하면, 함께 손을 잡고 등교하고, 병원을 순례하며 학교에 질병결석계와 처방전을 들이밀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축하해”라는 인사에 “내가 졸업하는 건가, 엄마가 하는 거지.”라는 내 딸의 우스개가 얼마나 귀엽던지 한참을 울었답니다.

올해는 분홍색 잠바 입고, 봄꽃 구경을 세 차례나 다녀왔습니다. 꽃구경 다니는 저를 아들이 놀립니다. “울 엄마 꽃구경 다니는 연세가 되셨나 봐요.”

어제 11시쯤 현관문을 여니, 이 두 녀석이 대단한 물밑 작을 해 놓았습니다. 핸드폰 레시피 뒤져 제육볶음 구워놓고, 시장 돌아돌아 방앗간 뒤져 떡도 맞춰다 놓고, 호박고구마 케익에, 촛불도 지펴놓고, 미역국이 쇠고기 단내를 풍기며 팔팔 끓고 있었습니다.

이런 못된 짓, 가르친 적도 없는데,...... 세상의 단 한사람 어미된 자로서, 이 아이들에게 뿌려준 건 눈물 몇 웅큼밖에 없는데, 이런 못된 물밑 작업을 해도 되는 겁니까?^^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저작권자 © 홍천뉴스 / 홍천신문 홍천지역대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