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귀농 경험을 쌓기 위해 고향에 빈 땅을 알아보았다.

아버지가 잘 보살펴 주었던 아저씨가 고향의 이장으로 계셨다.

나는 멀리서 내 일을 다 알아봐주는 아저씨를 한편, 어려워하고 한편 고마워서 아저씨에게 자동으로 쩔쩔매게 되었다.

작년 말까지 팔순의 나이로도 ‘사시는 아파트 옆 단지’에서 아파트 경비 일을 하시며 소일거리를 하시던 아버지가 일손을 딱 놓게 되셨다.

그러지 않으셔도 될 만큼 평생을 성실함으로 버티어 온 아버지께서 매일매일 무력감과 무기력증을 호소하셨다.

옆에서 지켜보기 너무 딱해서 오빠들하고 봄 한철 농사인 “고사리 농사”라도 짓게 하기 위하여 밭을 임대하기로 했다.

동네 이장 아저씨가 땅 600평을 임대할 수 있다 하면서 고사리 씨 값으로 400만원을 주기로 했다. 도회에 있으니까 자기랑 반반 농사를 짓자는 제안을 해 왔다. 우리는 반론의 여지없이 돈을 마련하여 400만원을 이장한테 송금했다.

2~3일 내로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있던 어느 날 우리는 고향에 내려가 질 좋은 유기농 퇴비를 40포정도 사서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 무렵까지 퇴비를 골고루 뿌렸다. 무척 힘이 들었지만 머잖아 쑥쑥 올라 올 고사리를 기대하며 허리 한 번 펴지 않고 재미나게 퇴비를 뿌렸다. 그러자 고사리 밭 옆 ‘소소 게스트’라는 예쁜 민박집 사장 동생이 아주 향긋한 커피를 대접한다고 불렀다.

맑은 바람 속에 실려 오는 꽃향기를 맡으며 게스트 하우스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대화가 자동으로 고사리 밭으로 흘렀다.

소소 게스트 동생 사장의 말을 듣자하니 그렇게 믿었던 이장 아저씨의 비릿한 흉계가 드러났다. 그 땅의 계약자는 자기 처로 해 놓고 농사는 우리가 놉을 사서 짓게 만들어 놓고 수확물은 나누어 먹으려는 심산이 드러났다.

5년 후에는 계약자인 자기 처가 그 땅을 매입할 수 있는 ‘최우선순위’가 되게 만들어 놓고 경작하지 않으면 면에서 땅을 부치지 못하게 할까봐 우리가 계속 농사를 짓게 만들어 놓았다. 더 경악할 사실은 고사리 씨 값으로 200만원을 지불했다는 것이었다.

400만원이라고 두 배로 불려 논 다음 자기는 슬쩍 발을 얹은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의 배신감과 불쾌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천연덕스럽게 우리의 숙소에 나타나 온갖 특혜를 베푸는 듯 너스레 떠는 모습에 분노감을 느꼈다.

아무리 잊어버리고 눈 감아 주려해도 점 점 차오르는 분노를 감당할 수 없었다.

분노의 감정을 2주 동안 똘똘 뭉쳐 두었다가 드디어 터지고 말았다.

이장에게 문자를 보내 불러 들였다. 그리고 정공법을 썼다.

그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그가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사기 치려고 했던 돈 200만원을 그날 중으로 받아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상대가 잘못을 해도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사실을 그가 알게 될까 전전긍긍했던 마흔 후반의 소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이제 인생을 당차고 정직하게 사는 방법 몇 가지를 터득하게 된 셈이다.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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