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월 터미널”에서 존경하는 선생님을 만나, 함께 굴국밥집에 갔다. 인도에 다녀오시는 선생님의 여행 가방이 크다. 하얀 스카프로 머리를 싸맨 칠순의 선생님이 곱다. 그의 안내로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는다는 식당에 갔더니, 초록색 나물이 밑반찬으로 나왔다. 주인장이 전국에서 귀하다는 “쑥부쟁이 나물”이라고 소개 해 주신다. 한 잎 넣고 보니, 쓴 맛과 향긋한 맛이 교차한다. 먹으면서 그 꽃모습에 대해 얘기가 돈다. 이구동성 무척 애처롭고 슬퍼 보이는 꽃이라 한다. 그도 그럴것이 이 꽃은 대장장이 딸의 넋이 꽃으로 화한 탓일 거라고 짐작해 본다.

옛날 아주 깊은 산골 마을에 가난한 대장장이 가족이 살고 있었단다. 대장장이의 큰딸은 병든 어머니와 11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돌보며, 쑥을 캐러 다녔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쑥 캐러 다니는 불쟁이 딸’이란 의미에서 큰딸을 ‘쑥부쟁이’라 불렀다.

어느 날, 쑥부쟁이는 산에 올라갔다가 상처를 입고 사냥꾼에게 쫓기는 노루를 만나 숨겨주었다. 그러자 노루는 은혜를 꼭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다시 길을 가던 쑥부쟁이는 멧돼지를 잡기 위해 파놓은 함정에 빠진 사냥꾼을 보게 되었다. 쑥부쟁이는 칡넝쿨을 잘라 밧줄로 삼아 사냥꾼을 구해주었다. 사냥꾼은 아주 잘생기고 씩씩한 청년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사냥꾼 청년은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내년 가을에 다시 찾아오겠노라’라는 언약을 남기고 떠났다.

그러나 기다리던 가을이 되어도 사냥꾼 청년은 돌아오지 않았다. 몇 해 동안 쑥부쟁이는 애타는 그리움에 점차 야위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산신령에게 정성스럽게 치성을 드리던 쑥부쟁이 앞에 몇 년 전 목숨을 구해준 노루가 나타났다.

노루는 보랏빛 주머니에 담긴 노란 구슬 세 개를 주며, “구슬을 하나씩 입에 물고 소원을 말하면 세 가지 소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쑥부쟁이가 첫 번째 노란 구슬을 입에 물고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하자, 어머니는 순식간에 건강을 되찾았다.

두 번째 구슬을 입에 물고 사냥꾼 청년을 나타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자 바로 그 자리에 애타게 기다리던 청년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는 이미 결혼하여 아이까지 두고 있었다. 마음씨 착한 쑥부쟁이는 마지막 세 번째 구슬을 입에 물고는 사냥꾼 청년이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마지막 소원을 써버렸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그 청년을 끝내 잊지 못하던 쑥부쟁이는 어느 날 그만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죽고 말았다. 쑥부쟁이가 죽은 그 자리에서 나물이 무성하게 자랐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쑥부쟁이가 죽어서도 배고픈 동생들이 나물을 뜯어먹을 수 있게 다시 태어났다고 여겼다. 쑥부쟁이 꽃은 아직도 그 청년을 기다리듯 해마다 가을이면 꽃대를 길게 빼고 곱게 피어난다.

알싸한 향기가 나는 쑥부쟁이 나물을 내 밥숟갈에 자꾸 올려 주시고, 굴이 알맞게 들어 간 순두부찌개를 덜어서 자꾸 내 밥그릇에 넣어 주시는 선생님과의 행복한 식사였다.

선생님께 그 자리에서 문학도답게 쓸쓸한 쑥부쟁이 전설을 읊어 드리며 늦은 저녁을 함께 들었다.

산야에 아니 평평한 지면에 노란 민들레꽃도 지천이다.

통재로 꺾어서 꽃만 버리고 줄기를 그러모아 쑥부쟁이처럼 데쳐서 나물 해 먹으면 그만이다.

그러고 보면 이 아름다운 봄날 인간에게 고운 색깔로도 입맛 돋우는 알싸한 향기로도 작은 풀들은 너무 지극한 봉사를 한다.

자연의 작은 움직임에 깊이 감사하는 봄이다.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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