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지 한 9년쯤 된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보다 앞서 그의 아내가 먼저 그곳으로 가 있었다. 대학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노래하다 경찰에 쫓기게 되었고 숨어 들어간 어느 절에서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들은 함께 살면서 공동의 목표를 향해 서로 협력하고 서로 사랑하고 영원할 거 같은 사랑을 나누었다. 힘들게 자식을 얻었고 금쪽같은 딸아이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끼고 사랑하며 잘 길렀다. 그렇게 함께, 긴 세월을 알콩달콩 살아갔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낫지 못할 병에 걸리고 말았다. 젊은 시절 경찰에 쫓기고 숨어 지내고 불안함을 이기지 못해 흡연을 한 탓이었을까? 사실은 낫지 못할 병은 아니었다. 한 번의 제거 수술 후 그녀는 완치 판정을 의사들에게서 받고 다시 건강한 세월을 회복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을 시기한 누구의 못된 장난이었을까?

다시 엣날처럼 쾌활하게 잘 지내던 그녀에게 재발의 경고가 뜨고 말았다.

옛 동지들을 만나 새로운 국면의 우리나라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밤늦게 난상토론을 하고 잘 쉬지 못하고 잘 자지 못한 결과물이었다.

그녀는 후회와 동시에 자신과 주변을 원망했지만 되돌릴 수 없었다.

그래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치료와 자연 치유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밖에 안남았다고 선고를 내렸다.

그럴수록 절박했던 그녀는 여러 가지 몸에 좋고 치료에 탁월하다는 여러 가지 민간요법을 다 실행해 보았다. 그 노력으로 그녀는 의사의 선고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이승에 머무를 수 있었다. 남편은 그녀를 위해 모든 치료를 동원하였고, 치료에 필요한 기 백(百)의 돈을 마련하기 위해 “트럭띠기 과일 행상”도 마다지 않았다. 한 트럭에 500만원 선금을 받고 먼저 치료비를 내고 그 돈을 벌기 위해 전국을 동분서주 하였다.

다행히 남자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개구리나 메뚜기를 잡아 팔아서 자기 용돈을 만들 정도로 장사 융통성이 뛰어났다. 그렇게 그저 함께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아내의 생존을 위해 노력했다. 가산은 더욱 기울었고 그는 남은 딸과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자기들이 살 몇 가지 연구도 도모하였다. 삶의 끝자락에 선 아내는 그런 그가 원망스럽다. 마음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입에서는 험악한 원망의 소리가 내뱉어졌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부부의 사이에 묘한 틈이 생기고 틈이 벌어질수록 아내는 더욱 불안해지고 더욱 조바심을 내며 마음에 없는 말들로 상채기를 내기 시작했다. 아내의 날카로운 신경질을 못 견딘 남편도 아픈 아내를 향해 똑같은 부피로 상처를 내고 돌아서서 두 사람은 서로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한다.

다시 안 그래야지 했다가 다시 싸우면 어제했던 말보다 더 뾰족한 말들로 마구 상채기를 낸다. 결국 남편의 끝간 데 없이 강력해진 비난을 견디지 못한 아내가 돌봐 줄 사람을 구해 남편의 곁을 떠난다. 보내고 난 뒤 더욱 미안해진 그는 더 열심히 돈을 모아 아내의 뒷바라지를 한다. 보고 싶은 마음에 달려가 또다시 싸우고 돌아서 오고, 상태가 나빠지면 병원으로 달려가 증세를 잠재우는 5년의 세월이 지나간 후, 좋아졌다 나빠졌다 거듭하던 예전의 그 뜨거웠던 민주의 투사는 시든 꽃잎처럼 떨어졌다.

도라지꽃이 온 밭, 온 산을 뒤덮던 7월의 어느 날이었다.

남편은 폐인이 되어갔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채, 목적을 잃어버린 밭 한가운데 서서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서너 시간씩 서 있었다. 어떤 때는 아예 방안에 갇혀 물만 마시며 며칠을 보내다 후배들이 와서 방안에서 끌어내기도 했다. 그래도 그의 딸은 잘 성숙해 가고 그는 슬픔과 고독을 벗 삼아 어떻게든 지내고 있다. 산사람은 억지로라도 살아지는 것이다.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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