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천군정신보건센터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견영기
독일의 문호 괴테는 노인의 삶을 다섯 가지의 ‘상실’로 표현했습니다.
늙어가면서 건강, 돈, 일, 친구, 꿈을 잃어간다는 뜻이지요.
73세의 나이에 19살의 소녀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괴테에게도 나이듦이란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는 힘든 과정이었나 봅니다.
이처럼 노년에 자연스레 찾아오는 상실의 슬픔과 공허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르신 분들에게 우울증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쉽게 찾아올 수 있습니다.

슬픔이 지나가는 감정이라면, 우울증은 해소되지 않는 마음의 체증과 같아 한 사람의 생각, 감정, 신체적 건강, 그리고 행동에까지 깊은 영향을 주는 질병입니다.

우울증의 증상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한번 체크해보세요. 먼저, 감정의 증상으로 우울한 느낌과 흥미를 잃는 것, 불안하고 초조한 느낌 등이 있습니다. 그 다음 생각 증상으로 스스로에 대한 무가치감과 죄책감, 집중의 어려움, 죽고 싶어지는 생각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체 증상으로 기운이 없어지고 식욕이 주는 증상, 수면이 불편해지는 증상 등이 있습니다. 어르신들의 우울증은 이러한 증상 외에도 신체적 통증이 심해지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안 되는 느낌으로 오기도 합니다. 우울증으로 인해 집중력 저하가 심해지면 유사 치매라고 부르는 상태에 이르기도 하지요. 이와 같은 증상이 2주 이상,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어 지속적으로 생활의 변화나 고통을 만들어내게 되면 어르신 우울증을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우울증의 치료는 감정과 생각, 몸과 행동의 방향을 바꾸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의외로 이 네 가지 중 가장 바꾸기 힘든 것은 감정입니다. 내 마음이 가장 마음대로 되지 않는 셈입니다. 우울한 감정을 성급하게 변화시키려는 생각은 내가 왜 자꾸 이러나 하는 자책감을 키워 오히려 우울증을 악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좀 더 수월한 방법은 슬픔을 우울로 바꾸어버리는 생각과 행동의 나쁜 습관을 변화시켜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잘못한 것만, 걱정되는 것만 자꾸 생각나게 되는 우울증 특유의 집착을 내가 잘하고 있는 것, 나의 괜찮은 것도 함께 볼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각으로 바꾸어주는 것이지요. 이러한 생각 바꾸기가 힘들 때는 몸과 행동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는 신호입니다. 이럴 때 첫째 방법은 막혀 있는 몸의 기운을 외부와 접촉시키는 것입니다. 바로 운동이지요. 실제 연구에서도 적절한 운동은 약과 비슷한 수준의 항우울 효과를 가집니다. 하지만 심한 우울증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시작조차 힘들 수 있습니다. 그때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 회복의 문을 열 필요가 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상담치료, 약물치료 등을 통해 우울증 회복에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항우울제의 투약은 뇌에서 감정, 생각, 신체의 신호를 전달하는 뇌 호르몬을 증가시켜 우울 증상을 효과적으로 치료해 주게 됩니다.

우리는 나이 드신 존경스러운 분들을 어르신이라고 부릅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노년의 고통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분들이야말로 그냥 노인이 아닌 가장 존경스러운 어르신입니다.

존경스러운 노인은 어느 사회에서나 가장 빛나는 길잡이 별이었습니다. OECD 자살률 1위의 힘겨운 우리 사회는 그러한 빛나는 어르신들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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