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이냐 부탁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최근 우리사회가 점점 투명해지면서 청탁과 부탁 사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청탁의 개념과 범위를 정리한 책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부패예방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가 내놓은 ‘청탁행위 대응매뉴얼(부제 : 알선 청탁이 괴로워)’이 바로 그 책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전국 공공기관 1천여곳의 감사부서장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2012년 부패방지 시책 추진 전달회의’에서 청탁으로 인한 괴로움을 덜어 줄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담긴 이 책을 보급했다. 청탁과 부탁의 차이를 알면 청탁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 인사와 예산집행 공직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현행 형사법상 청탁은 일반적으로 ‘부탁’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에 비해 알선은 일정한 사항에 대하여 공무원(알선상대방)과 제3자(알선의뢰인) 사이에 서서 중개를 하거나 편의를 도모하는 것을 의미한다. 형사법의 해석상 알선도 넓은 의미에서 청탁에 포함되기 때문에 개념상 청탁과 알선은 동의어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청탁을 받는 공무원의 입장에서 보면 알선도 결국 청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형법상의 청탁은 긍정적 혹은 부정적 가치 판단을 지니지 않는 것으로, 청탁을 받았다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청탁을 받고 그 청탁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한 판단 요인이다. 공직자가 청탁을 받을 당시에는 그 정당성 여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사후 또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정당성 여부를 평가할 수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만든 청탁 대응매뉴얼은 청탁을 통한 부정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고안되었으므로 청탁범위를 형사법적 적용보다는 확대하여 시행할 필요가 있다. 청탁은 공직자가 공정한 직무수행에 부담을 느껴 공정성을 저해하게 되는 것이므로 공직자마다 개인차가 있는 윤리적 심성을 객관적으로 명확히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청탁개념을 사전에 엄격하게 설정하기 보다는 공정성을 저해할 수 있는 각종 양태를 반영한 의사 표시를 청탁의 범위로 넓게 설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공정한 직무수행과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탁의 예를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즉 통상적인 행정절차를 벗어난 신속한 업무처리 요청, 일반민원인과는 다르게 과도한 편의 특혜제공 등 우대요청, 과태료 과징금부과 등 각종 의무사항을 지연면제요청, 단속 점검 등 관리 감독권 행사를 소홀히 하도록 요청, 각종 시정명령을 약화시키도록 요청, 상벌 승진 등 각종 인사에 있어서 우대 특혜요청, 상급기관으로부터 특별한 업무처리 요청 등이다.

그러면 공직자에게 직무수행이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판단기준은 무엇인가. 이는 청탁을 받은 공직자가 청탁을 수용 또는 거절할 경우 본인에게 이해관계가 발생하는 행위와 청탁자의 부탁으로 인해 공직자가 스스로 공정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합리적 범위를 넘어 심리적으로 부담을 주는 행위를 각각 말한다.

이에 비해 청탁에서 제외되는 행위는 어떤 것인가. 일반국민이나 공직자가 관련법령에 따라 공직자에게 정상적으로 요청·진정·지시·권한행사·추천 등을 하는 경우는 청탁행위로 보지 않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민원인 본인 또는 그 가족의 민원요청, 민원인의 대리인이 하는 행위, 사실관계에 대한 단순한 확인·문의·진정 등은 청탁행위로 볼 수 없다.

또 기관간 업무 추진을 위한 자료 요청사실조회 등을 협력하는 행위, 결재권자(상급자)의 정상적인 업무지시, 인사부서가 직무상 인사추천을 받은 경우 등은 청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요컨대 청탁은 본인 또는 타인의 이익을 위해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수행이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사표시다. 반면에 부탁은 질의 요청 진정 등과 같이 관련법령에 따라 정상적으로 공직자에게 요청하고, 공직자는 당연히 들어 주어야 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김덕만/국민권익위원회홍보담당관(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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