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잎이 다 떨어지고 스산한 바람이 부는 늦가을 김장철이다. 예로부터 가을김장은 반양식이라고 했다. 가난하고 어렵게 살 때의 얘기로 불과 반세기전의 일이다. 가을 추수를 끝내고 춥고 긴 겨울을 맞기위해 반찬으로서의 김치보다 영양을 위한 보충양식거리라고 보는게 더 나을 것이다. 말 그대로 부식이다.
   김장김치가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어떤 문헌에도 정확히 나오는 게 없고 미루어 추정해 보건대 오늘날의 김치는 조선시대 중반이후부터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지가 조선중반 이후부터이기 때문이다. 그전에도 김장김치가 있었겠지만 고춧가루와 갖은 양념을 넣어 만든 오늘날의 김치가 아니라 배추나 무에 소금을 넣은 오늘의 백김치 같았으리라 예견된다.
   나의 유년시절은 시골이었다. 시골 웬만한 집에서는 김장김치를 100여 폭 이상 했다. 김장을 담그는 방법은 모두 비슷비슷했지만 그 맛은 집집마다 달랐다. 그래서 김치맛은 그 집 안주인의 손끝에서 난다고 하지 않던가.
겨울이 시작되기 전 무를 뽑아서 밭 가운데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 무를 묻어두고 배추는 소금에 절여 냇물에서 씻었는데 날은 춥고 물은 차가워 뜨거운 물을 함지에 담아 시린 손을 녹여가며 배추를 씻었다.
   그 당시에 고무장갑은 생각도 못했던 시절이었다. 이웃 아녀자들이 모여 김장을 담글 때 남자들은 겨울저장무를 넣어둘 구덩이를 파고 김치광을 짓는데 집 뒤뜰이나 앞마당옆 공터에 1m정도의 구덩이를 파고 큰 항아리, 작은 항아리, 동치미 항아리 등등 오지항아리를 입구만 내놓고 90%쯤 묻고 뚜껑을 덮는다. 그 몫은 전적으로 남자들의 차지다. 요즈음은 김치냉장고가 있어서 그럴 필요가 없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것이 보편타당한 일상이었다.
겨울 김치는 질그릇인 옹기항아리에 넣어 보관해야 제 맛이 나는 거다. 이듬해 봄까지 먹으려면 적당히 익어서 알맞게 간이 배야 된다. 요즘은 농촌까지도 웬만한 집이면 다 김치냉장고가 있는데 그 냉장고를 만든 회사의 일화가 재미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등 많은 회사가 경쟁적으로 김치냉장고를 만드는데 기술력을 쏟아부었고 그 중에서 가장 성공한 회사가 바로 김치를 땅에 묻었을 때 김치의 맛과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김치냉장고가 가장 성공했다고 하니 뭐니 뭐니 해도 역시 김치의 제맛은 땅에 묻어야 하는가보다.
   오늘날의 김치는 특별히 겨울을 대비한 가을김장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계절과 관계없이 속이 꽉 찬 배추가 생산되기 때문에 어느 때나 김치를 담가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김치가 우리 한식만의 고유한 반찬이 아니다. 해외여행을 가보면 세계의 관광지나 호텔에는 빠짐없이 김치가 나오고 있고 이제는 세계인의 음식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 맛에 있어서는 종주국인 한국의 가을 김치맛을 따를 길이 없다.
   며칠 전에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비가 그친 후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안계신 이 땅의 우리의 어머니들. 당신들은 지금 저 먼 하늘나라에서 누구의 가을 김장을 정갈하게 담그고 계시는지요!
강정식 시인, 전 홍천문화원 부원장, 국가민간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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