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의 한서문화제를 30회로 마감하고 그 후속 축제인 나라꽃 무궁화 축제가 올해로 3회째를 맞이했다. 한서제때는 읍면대항 체육경기를 겸해서 문화축제보다는 체육행사에 무게가 쏠려 문화행사의 의미가 퇴색한 면이 있었으나 이번 축제는 문화행사 중심으로 몇 가지의 운동경기를 빼고는 대부분이 민속행사와 기타 축제로 이뤄진 축제였다.

모든 축제가 그러하듯이 축제는 그 장소가 중요한데 이번 행사는 세 곳에서 분산 개최했다. 주행사장은 종합운동장으로 개회식과 민속체육경기를 도시산림공원에서는 학생 과학 잔치와 전통행사 등 부대행사장으로 이용됐다.

그리고 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여흥을 돋우는 먹거리 장터인 야시장은 도시산림공원 맞은편 둔치강변으로 일주일 전부터 개장하여 축제분위기를 만들고 야시장과 도시산림공원사이 화양강에는 기존의 돌다리와 소나무가지를 꺾어 만든 섶다리를 놓아 옛 정취를 한껏 살렸다.

하지만 야시장의 몇 가지 문제점도 있었다. 장소가 협소하다는 의견이었고 또 하나 필자가 보기엔 야시장바닥이 맨 흙으로 먼지가 많이 나 음식점의 위생이 아주 불결했음을 지적하고 싶다. 제시된 문제의 해결로 우선 장소가 협소하다는 의견에는 현 야시장의 위아래로 구역을 확대하면 된다.

즉 아래쪽은 화양강다리서부터 위쪽으로는 홍천교 밑까지 확장한다면 현재의 터보다 배가 느는 셈이니 문제가 해결되고 맨 바닥 먼지는 시멘트 포장을 하면 된다. 물론 예산이 드는 일이지만 어차피 둔치를 활용하려면 맨 바닥은 곤란하니 포장을 해서 다용도로 겨울축제 때에도 쓰면 되지 않을까 하는 대안이다.

이번 축제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볼거리가 많은 축제였고 특히 홍천의 과거기록사진 보관이 돋보였다. 홍천은 춘천과 원주의 문화권이 아닌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자존심 높은 긍지의 7만군민의 한마당 축제를 해마다 열고 있다.

여름에는 찰옥수수 축제와 가을의 인삼한우축제, 겨울의 홍천강얼음축제가 있는데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지금은 없어진 한서제가 유일한 홍천의 축제였다. 1970년대 최초로 한서제가 만들어져 주최를 맡고 홍천문화원과 청년회의소 외 여러 단체가 협력해서 몇 회를 주관하다가 한서제위원회가 주최는 하되 홍천군이 주관이 되는 관변행사로 16회까지 했고 17회 때 다시 민간주도로 이관되어 한서제추진위원회가 설립되어 주최와 주관을 겸하고 군과 각 기관단체, 체육회 가맹단체 등의 적극적인 협조로 치러졌다.

민간단체로 넘어오면서 제일 먼저 한서제를 홍보할 캐치프레이즈(표어)를 공모했으나 마땅한 작품이 없어 필자가 창작한 “무궁화 큰 잔치 화합의 한마당”을 표어로 선정하여 적극 홍보하고 임원이 구성 되었다. 당시 민간단체인 한서제 초대위원장에  최재경, 사무국장에 황영철, 간사에 이명열, 필자는 예술문화부장에 임명되어 17회부터 24회까지 한서제를 치뤘다.

17회 때 제작된 캐치프레이즈는 모든 홍보물(현수만, 기념품, 포스타 등등)에 새겨져 홍천의 무궁화 나라꽃 이미지에 큰 획을 남겼는데 한서제가 막을 내리기 몇 해 전부터 슬며시 없어지더니 지금은 아예 사용도 하지 않고 있다. 가끔 홍천의 홍보물 제작에 나오는 문구에 “화합의 한마당”이란 용어는 있으나 그건 반토막 표어밖에 안된다.

한서제가 없어지고 나라꽃무궁화축제에 아주 합당한 표어인데 축제위원회에서는 내년도 4회 때는 옛것이라고 버리지 말고 다시 사용했으면 어떨런지. 과거를 보아야 미래를 안다고 현 축제의 기초인 한서제의 일부분이라도 그 맥을 잇는다는 정신으로 이 표어를 쓴다면 좋겠다.

이번 제3회 무궁화 축제를 관람하고 그 느낌을 몇 줄 여기에 적어보았다. 이번 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끈 서성각 축제위원장과 실무전반에 애쓴 전상범 사무국장에게 정말 수고가 많았다는 말씀을 전한다.

2011. 10. 9 이슥한 가을 밤에    
강정식 시인 /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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