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터키 후라이드 치킨(KFC)’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의 창업자인 할랜드 샌더스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잘 알지 못합니다. 그는 최종학력이 초등학교 중퇴밖에 안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여섯 살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일하러 나간 사이 그는 어린 두 동생을 돌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열두 살 되던 해 어머니마저 재혼하여 가정을 떠났습니다. 그는 열 살 때 처음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여 농장인부, 자동차 페인트 공, 전차차장, 농부, 연락선 기사, 보험설계사, 철도노동자 등 온갖 허드렛일을 전전하며 불우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십대 초반에 결혼을 한 후 큰 꿈을 갖고 조그만 사업에 손을 댔는데 완전히 망했고 부인까지 도망가 버렸습니다. 살고 싶은 의욕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으려고 술과 수면제를 먹은 상태로 고속도로로 들어갔지만, 힘이 없어서 길가에 차를 세우고 쓰러졌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것을 보고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후송해서 위세척을 통해 생명을 살려냈습니다. 의식이 깨어난 그는 화를 냈습니다. “누가 내 생명을 살렸느냐? 나는 죽어야 할 사람인데” 살려준 사람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링거를 빼 던지고 난리를 피우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날 병원복도에서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초라한 흑인 청소부 아줌마인데 발뒤꿈치를 보니 동전이 들어갈 정도로 세 군데나 갈라져 있었습니다.
   샌더스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흑인에다가 청소부 주제에 뭐가 그리 좋아서 흥얼거리나? 그러나 그의 얼굴은 천사 같고 눈동자가 빛났습니다. 기쁨과 행복이 흘러넘쳤습니다.
샌더스가 병원에서 나올 때, 흑인 아줌마가 돈을 좀 주었습니다. 샌더스는 닭 한 마리를 사서 부위별로 잘라 튀겼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 만드는 것이 그의 취미였는데, 자기가 먹어봐도 너무 맛있어서 이것을 나 혼자만 먹어선 안 되겠다 싶어 시장에 나가 팔았습니다. 그리고 닭 세 마리를 샀습니다. 세 마리를 요리해서 팔아 아홉 마리를 샀습니다. 너무 맛있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이라고 써 붙여 놓고 팔기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오늘날 세계적인 체인점이 된 것입니다. 
   그는 억만장자가 된 후에도 기쁨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는 노인들을 위해 양로원을 만들어 후원하고 고아원을 지원하며, 복음 전하는 일에 목숨을 건 선교사들을 돕는 일을 했습니다.
   켄터키 치킨이란 훌륭한 맛을 남겨놓았으며 고아원과 양로원 선교사님들은 여전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의 편지를 읽으시는 분들이여! ‘KFC’가 있기까지의 가장 큰 배경은 두말할 나위 없이 흑인 청소부 아줌마였습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어떤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샌더스가 처음 캔터키 치킨을 만들었을 때 즉시 성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도 시련은 피해가지 않았습니다. 가게 앞 도로 대신 새 도로가 생기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손님들이 줄었습니다. 크게 좌절했지만 범사에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어려움 속에서 지혜를 구했습니다. 샌더스는 요리 비법을 가르쳐 주고 로열티를 받는 일종의 체인점 형태로 사업을 전환하여 마침내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절망의 상황이 오히려 거대한 KFC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배명동 (사)너브내가족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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