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라토는 ‘거세하다’(라틴어 castrare)에서 유래되었으며, 이탈리아에서는 ‘에비라토(이탈리아어 evirato)’라고도 합니다. 선천적으로 소프라노의 음역을 내는 변성기 이전의, 보이 소프라노와는 구별됩니다. 이는 중세 유럽의 합창단에서는 여성이 합창단원이 되는 것을 부정하게 여겼으므로 남성으로 하여금 여성의 음역을 내게 하기 위해 합창단원들을 거세시켜 변성기를 막아 여성의 음역을 내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에는 여성 음역을 노래하는 남성가수들이 많이 활동하게 되었는데, 이때 여성의 음역을 노래하는 남성가수를 카스트라토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카스트라토의 대안으로서 20세기 후반기에 새로운 영역으로 부각된 카운터테너의 기원은 영국 성악가 알프레드 델러(1072-1979)입니다. 그는 독학으로 카운터테너의 영역을 복원한 이후, 최근에는 이른바 카운터테너 빅3까지 등장하였으니. 일본 혼혈의 브라이언 아사와, 미국의 데이비드 다니엘즈, 독일의 안드레아스 숄 등이 그들입니다. 이외에도 일본의 요시카즈 메라나, 독일의 요한 코발스키, 사망한 브라질의 파울로 나시멘토 등이 일련의 스타급 카운터테너들의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게 다가오는 이름인 안드레아스 숄은 1967년 독일 비스바덴 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7세가 되던 해에, 650여년 전통의 키트리헤어 소년합창단(kiedricher Chorbuben)에 들어가 노래하기 시작했고 이곳에서 유년기를 보내게 됩니다. 숄의 가족은 모두 그 합창단에서 활동하였는데, 그의 형 요하네스와 누이인 엘리자베스도 여기에서 노래했을 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는 잠시 동안 지휘를 맡기도 하여, 그의 가계에 흐르는 음악적 전통을 엿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유혹적인 카운터테너 보이스 중의 하나!”라고 격찬을 받은  숄은 1996년 비발디의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음반으로, 1997년 안토니오 칼다라(Caldara)의 작품 녹음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내며 2회에 걸쳐 그라모폰 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하여 수많은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1998년부터는 그동안 활동하던 아르모니아 문디 프랑스에서 데카 레이블로 소속사를 옮긴 뒤에 첫 앨범 영웅들(Heroes)로 카운터테너 계의 진정한 히어로로 등극한 그는 이어서, 1999년에는 페르골레지의 스타바트 마테르, 최근에는 비발디의 니시 도미누스(Nisi Dominus) G단조와 살베 레지나(Salve Regina) C단조 등을 담은 음반을 출시해 오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1998년 그는 드디어 오페라 무대에도 서게 되는데 윌리엄 크리스티의 지휘로 영국의 글라인드본 페스티발에서 헨델의 ‘로델린다’(Rodelinda) 중에서 베르타리토(Bertarido)를 불러 격찬을 받으며 성공적 데뷔를 한 바 있습니다.
   최초의 카운터테너로 꼽혀지는 영국의 알프레드 델러 이래로 지금까지의 모든 카운터테너 중에서 가장 서정적이고 달콤하면서도 풍요로운 음성을 가졌다고 평가되고 있는 안드레아스 숄은 여타의 카운터테너와 달리 여성적이기보다는 깊이를 지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중성적인 카운터테너로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해 한 CF에 그가 직접 만든 곡인 3카운터테너 음반의 수록곡 “백합처럼 새하얀(White as Lilies)”이 삽입되어 그의 노래를 대중적으로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2000년과 작년 두 차례 내한공연을 펼쳐 그동안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카운터 테너의 진수를 선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노래는 기술적인 것보다는 그 음악 속으로 인도하는 색채나 감수성을 중시하고 영적인 면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쓰여진 것을 연주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감히 그것을 ‘살아야’ 한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는, 과연 당차고 아름다운 신세대 아티스트라 할 만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배명동 (사)너브내가족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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