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향기로움으로 가득한 푸른 5월이다. 5월은 가정의 달로 불린다. 어린이 날을 비롯하여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등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정은 1차적인 사회적 집단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가정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새로운 형태의 ‘고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고아란 부모형제가 없어 의지할 곳이 없는 아이를 말한다. 동서고금을 통해 고아는 전쟁 중에 많이 발생 했다. 또한 지진이라든가 자연재해가 고아를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증가 추세에 있는 신종 고아는 부모형제가 버젓이 살아 있음에도 생겨나고 있다. 과거의 잣대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다. 신종 고아는 부모의 이혼으로 생겨나는 고아들로 일명 ‘버려진 아이들’이다. 부부의 연을 끊으면서 부모 자식 간의 천륜도 함께 끊어 버리는 경우다. 신종 고아는 최근 이혼율이 급증하면서 사회적인 문제의 차원을 넘어 국가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부모가 이혼을 했어도 고아 신세는 면한 ‘한 부모 자녀’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낳아주신 부모님들이 멀쩡하게 살아 계심에도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사는 학생,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사는 학생들이 있다. 한 자녀의 경우 부모는 공백을 메워주기 위해 애를 쓰지만 양부모가 계신 것처럼 완벽할 수는 없다.
   지식정보화 시대로 불리는 현대사회는 과거처럼 자식이 부부의 연결고리가 되는 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자녀에 대한 사랑과 양육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즉 성격의 차이 등을 극복하지 못해 더 이상 부부로서의 연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더라도 자녀에 대한 사랑만큼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요즘 텔레비전 뉴스를 보기가 두려울 때가 있다. 부모에게 끔찍한 패륜을 저지르는 소식이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저런 모습은 방송에 나오지 말아야 할 텐데 하는 내용까지도 정제되지 않고 무분별하게 전파를 타곤 한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 부모인 우리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다.
   자녀가 귀해 지면서 지나치게 ‘오냐오냐’ 키운 결과다. 자녀가 귀할수록 엄히 키워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진리다. 부모와 어른을 알아보고, 가정의 질서를 지킬 줄 알고 예의범절이 살아 있는 자녀로 키워야 한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는 이기심을 키워 주위를 둘러 볼 줄 모르고 자기만 아는 비뚤어진 사람을 육성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가정이 온전하게 유지되려면 가족 간의 사랑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사랑은 가끔 확인이 요구된다. 사랑은 소통으로부터 시작된다. 소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화를 많이 나눠야 한다. 현대인의 바쁜 일상이 대화를 빼앗아 버렸다. 따라서 억지로라도 정기적으로 대화의 시간을 마련해 가족이 공통의 주제로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요즘 청소년들은 부모, 형제, 가족보다 핸드폰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 이런 사람이 사회를 위하고 국가를 위해 일할 줄 안다. 핵가족 시대라고는 하나 가족이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많이 가져야 한다. 가급적이면 부모형제는 물론 일가친척들이 함께 하는 행사를 자주 가져야 한다. 
   부모도 자식에 대해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같은 인격체로서 존중해 주어야 한다. 세태의 빠른 변화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눈높이를 자녀에 맞추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자녀의 의견을 수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현대인은 매우 바쁜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여유를 가질 틈이 없다. 하지만 가정의 달 5월만큼이라도 가족 간 사랑을 나누며 서로 간에 애정을 확인해 보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어른들이 먼저 자녀들에게 다가가며 세대 공감을 이루려는 노력이 필요한 가정의 달이다.
이영욱(홍천고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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