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60주년을 맞이하여 당시 상황을 자세히 들고 젊은세대들에게 전달하여 안보관을 형성하고자 6·25 참전유공자회 홍천군지회장인 최상규 씨를 만났다. 최상규씨는 당시 상황을 “우리 6·25참전 용사는 광목 바지저고리에 물감을 들여 군복으로 입고 다 해진 훈련화를 신으며 적군과 싸웠습니다”라고 하면서 당시 상황을 떠올리고자 지그시 눈을 감았다. 
6·25전쟁 당시 몇 살이셨고 전쟁이 발발한 후 어떠한 경로로 전쟁에 참전을 하시게 되셨습니까?
▶ 6·25 전쟁 당시 저는 24세로 그 당시 육군수도사단에서 복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터졌다는 청천 날벼락같은 소식을 들은 후 우리사단과 예하 장병들은 바로 전장에 투입이 되었습니다.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으로 급박하게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전쟁기간 동안 어떠한 전투에 참여를 하셨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 전쟁이 터진 후 우리 수도사단 공병대대는 동해안에서 포항, 길주까지 점령하는 임무를 맡아 이를 시행했습니다. 그리고 1·4후퇴 후 향로봉에 있다가 거진을 거쳐서 월비산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월비산 전투에서 승리한 우리군은 함양에서 전투를 한 후, 무주로 들어가 그곳에서 공비소탕을 하는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그리고 6·25최대 격전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금화전투에 참가 하였습니다.
당시 전투상황과 전투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를 말씀해 주신다면요?
▶ 금화전투는 6·25최대격전지 중 하나로 하루에도 수십번 고지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주로 낮에는 한국군이 주인으로 있었고 밤은 북한군이 주인이었습니다. 고지 주변을 얼마나 포로 사격했는지 땅이 무릎까지 빠질 정도로 물렁했습니다. 아군과 적군의 시체는 사방으로 널려있는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오후 1시20분정도 후방에서 휴전 협약을 맺을 당시의 전투가 가장 치열했습니다. 전방에서는 적들이 무수히 달려들었고 총소리와 포소리는 극에 달했으며 우리는 백병전으로 적을 맞았습니다. 오후2시 휴전이 됐다는 전보가 오니 갑자기 조용해지더군요. 우리는 모두 자신의 목이 붙어 있는지부터 확인을 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전투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공비소탕 작전이었습니다. 사실 그곳이 전방보다 더 무서웠죠. 저는 매복조였는데 계곡에서 공비들이 지나갈 곳에 조명지뢰를 설치하고 매복해있다가 적이 지나가면 돌맹이로 대대에 신호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잠시후 1개연대 규모의 공비가 지나가더군요. 신호를 보내니 계곡에 엎드려 있으라는 무전이 온 후, 사방에서 포와 총소리가 들렸습니다. 계곡에 엎드려 있는데 날이 얼마나 추운지, 상부에서 매복조는 총을 쏘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는데 총이라도 쏘고 총열을 잡아 온기를 찾고 싶을 정도였죠. 전우와 둘이 기대어 칼날같은 추위와 죽음의 공포에 떨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새벽녘, 전투가 끝난 후 우리는 임무를 충실히 이행해 연대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나오던 길에 간밤의 전투로 잡힌 포로를 보니 발은 동상이 걸려 시커멓고 여자 공비 또한 엄청 났습니다.
전투중에 쓰러져 가는 전우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그리고 폐허가 된 조국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던가요?
▶전우중에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 있었는데 전투중에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웃긴 것이 전우시체 근처에도 가기 싫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는 가족을 잃은 것 같이 가슴속 한구석이 아련히 저리더군요.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우리 공병대대는 무너진 다리를 다시 놓고 학교를 짓고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습니다. 초토화된 국토를 보면서 정말로 말문이 막히더군요.
지금도 북한의 도발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젊은세대들의 안보관은 매우 미흡하다고 생각되는데 6·25참전 용사로서 어떠한 생각이 드십니까?
▶지금 젊은 세대들의 안보관을 보면 참으로 답답합니다. 얼마전 천안함 사건을 보아도 북한은 우리의 동포이지만 적입니다. 이를 젊은이들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얼마전에 참전용사들이 안보교육차 군부대를 방문했는데 모든 것이 바뀌었더군요. 전시는 아니지만 확고한 안보관으로 군인들이 좀 더 패기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 회원이 홍천에 약 580여명이 있는데, 이들 모두가 철저한 안보관형성을 위해 노력할 계획입니다.
마지막 질문이었던 현재 6·25참전 유공자에 대한 대우에 있어서 최상규 회장은 “현재 우리는 나라로부터 월12만원가량 지원을 받고 있는데 이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부족한 금액이며, 그 외에 많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현재 군에서 나오는 사무실 운영비도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을 아꼈다.
김경식 hcnews@y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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