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기天機는 다음 네 가지가 보인다. ①매우 중대한 기밀 ②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이나 성질 ③만물을 주관하는 하늘이나 대자연의 비밀 또는 신비 ④임금이 비밀리에 내리는 명령이나 나라의 기밀 등이다. 여기에서는 세 번째의 뜻으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겠다. 철학자이기에 철학의 의미에 맞도록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다. 모든 사물은 하나가 둘을 타고 있고,
상좌상이 화선지에 그림을 그려 가지고 뒷면에 빳빳한 대지를 붙여 두루마리로 만들어 왔던 모양이다. 그림을 그런대로 그렸는데 얼른 시제를 붙이지 못한다거나 시제야 생각했다손 치더라도 붓글씨에 자신이 없어 전문가를 찾는다. 좋은 그림에 좋은 시제 혹은 일필휘지의 글씨는 그림의 품격을 올려주는 역할까지 할 수 있다. 날 저문 강가에 쓸쓸하고 외로운 그림자, 그늘
깊은 생각 속에 시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순간적인 스침이나 즉흥적으로 쓴 글을 우리들은 실제로 경험하게 된다. 가만히 있는 자연적인 객관적 상관물도 걸으면서 보면 또 새롭게 보이고, 움직이는 물체도 정지해서 보는 것보다 움직이면서 보면 또 달리 보이는 수가 있다. 이동의 변화로 인한 현상으로 그 느낌이 새롭게 보인다. 뉘엿뉘엿 지는 해가 황야에 임하고 보니
사대부들 문화는 누정이 중심이었다. 흥얼거리는 가운데 운자를 냈고, 그 운자에 따라 나이 연만한 어른이나 시상 재능이 탁월한 사람이 ‘원운시原韻詩’ 한 조각을 털어 내놓는다. 누정에 앉았던 선비들이 이 글을 듣거나 돌려 읽고 다음 시를 지었으니 이것이 ‘차운시次韻詩’다. 원운과 차운시를 통해 주고 받은 일은 생활화 되었다. 국화가 달빛에 어리어 멀리 비추고
‘봄바람’났다고 말한다. 차가운 북풍이 몰아친 한 겨울이 지나고 나면, 훈풍이 불면서 마음을 설레게 한다. 봄은 따스한 공기뿐만 아니라 마음속에도 와 있다. 속설에 두툼한 겨울옷을 벗고 봄옷으로 갈아입은 이웃집 아가씨를 곁눈질해 보았던 노총각은 영문도 모르면서 ‘봄바람 났다’고 말했었다. 아주머니들도 그렇게 수군댔다. 수양버들 곱게 늘어진 창을 열고 기대서
집안에만 있다가 바람을 쐬고 나면 다소는 기분이 상쾌하다. 멀리 보이는 풍경에 취해서 한 바탕 시상을 일구고 나면 그 물씬한 시심덩이는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보는 경치가 그럴진대 길을 걷다가 늘 변하는 경치는 시심 덩이를 더 했을 것이다. 이럴 때는 망설일 것이 없다. 보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시를 쓴다. 고향을 떠난 나그네는 세월을 아쉬워하는데 천리
고려의 전통을 이어받은 조선에서는 불교와 유교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근 500년이나 자리 잡은 불교를 국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내칠 수만은 없었다. 이런 이유로 백성들의 생활은 자연스럽게 불교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스님과 자주 만나고 서로가 주고받은 정만큼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으리니. 종소리가 달을 치다가 가을 구름 속으로 떨어지고, 산비
봄이 되면 마음 상할 일도 많았던 모양이다. 작년에 피었던 꽃은 금년에도 곱게 꽃이 피지만, 이 내 인생살이는 팍팍하고 늙어가고 있으니 한탄할 일도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봄이 되면 멀리 떠난 임이 오신다고 했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어 속상할 일도 많았다. 봄이 되면 대학에 가야되는데 형편 때문에 가지 못해 속상하다. 차를 한 잔 마시자 졸림이 말끔히 가시었
통합예술이라고 했던가. 선현들은 재주는 시서화詩書畵를 같이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시상이 흐르는 내용으로 보아 그림을 원만하게 그려놓고 제목을 맨 나중에 붙이면서 며칠을 고심했던 장면도 만난다. 뿐만 아니라 저명한 인사에게 시제 써주기를 부탁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림을 그려놓고 고심한 끝에 시제를 붙이면서 가을바람 속에서 단풍잎은 누렇게 물들고, 청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는 중인과 교류가 깊었던 양반 선각자이다. 서얼 출신 검서관 박제가의 제자이기도 한 추사는 송석원시사의 좌장 천수경의 부탁으로 1미터가 넘는 화폭에 예서체로 ‘松石園’ 석 자를 써주기도 했다. 추사는 또한 역관 오경석, 이상적, 화원 조희룡을 제자로 삼았고 최고 걸작 ‘세한도’를 그려주었다 한다. 푸른 버들 드린 사이로 꾀꼬리가
‘송석원’은 추사 김정희가 쓴 [松石園]이란 편액을 걸고 불우한 시인들과 시와 술로 소요자적 했던 흔적을 찾는다. 후일 고종 아버지 흥선대원군도 여기에 나와 큰 뜻을 길렀다고 한다. 문학이 중인을 문화공동체로 결집시킨 과외 활동이었다면, 그림과 음악은 그들의 대표적인 직업의 하나였다. 추사는 이렇게 근접한 생활을 했다. 북쪽 계곡 맑은 그늘 경개 마냥 좋고
김종직 문인으로 강직하게 살아온 흔적이 높은 만큼 시문도 강직해 보인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푸른 부들과 보리가 익는 맥추(麥秋) 그 이름대로 누렇게 익은 보리를 회화적으로 그린 묘미가 있는 듯하다. 땅 이름인 화개(花開)는 꽃이 핀다는 뜻이기에 푸른 부들, 누런 보리와 어우러져 산뜻한 색채감을 더한다. 바람이 하늘하늘 푸른 부들을 가볍고 부드럽게 희롱하는데
살구나무 한 그루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사람의 시선을 그리 많이 받지 못한 편이다. 살구나무 자체가 우람하게 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새큼한 그 열매가 구미를 크게 자극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울타리의 역할을 하는 살구나무가 있는가 하면, 물가의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인의 이처럼 흰 이빨에 걷어 올린 붉은 입술하며, 난초와
남자가 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절절한 정을 담아 시상으로 담기도 했다. 시인 자신의 섬세함일 것이다. 여자의 마음은 섬세하여 작은 것도 신중하게 조그마한 것도 생각을 깊이 하는 수가 많다. 남편이 먼 지방에 있었던 모양이다. 공직에 있었던지 귀양을 가 있을 수 있음을 가정하는 여자의 규정閨情 한 마당을 담아 놓았다. 아직까지도 보내지 못한 겨울옷을 생각하면
매월당은 청평사에서 오래 둔거遁居했다. 이때 그는 ‘학매學梅’라는 제자를 두었는데 후대에 서산대사와 맥이 닿았던 인물이다. 유객有客 시는 두보에서 나온 듯하다. 이 말에는 지조와 자기성찰이 담겨져 있다. 수련에서는 ‘유한幽閑’과 ‘초매超邁’라는 품격이 잘 나타나 있는 점을 감안하면 허균은 한껏 한적하다(閑適自任) 평했다. 좋은 나물 돋아날 때를 미리 알고,
시 한 편으로 정승의 사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우화와 같은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 있었던 일을 꾸몄다. 아버지가 정승을 만나러 간 이야기며 그래서 만나지 못하고 되돌아 와서 그런 사실을 명함에 써두었던 일 등은 어쩌면 정승의 마음을 깨우치는 동기가 되었다. 다행이 이를 제목으로 붙이지 못한 사실도 지적한다. 정승은 단잠 깊어 해가 높다랗게 올랐는데,
‘보천탄에서’ 2수 중 첫째 수다. 변화되는 경과 정을 가볍게 정리해 본다. 복사꽃이 떨어지고 냇물이 불어 바위가 잠기고 말았다고 하여 냇물이 불었다는 상황의 변화 속에 가마우지가 불어난 냇물 때문에 터전을 잃었다.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입에 문 채 풀숲에 들었으니 터전을 잃었다고 삶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음을 강조한다. 눈이 녹아 물결이 몇 자쯤이나 높아졌
글을 쓰다가 꽉 막히는 수가 있다. 공부를 하다가 머리가 ‘찡’하면서 안정되지 못한 경우가 있다. 그림을 그리다가 처음 의도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그려진 수가 있다. 이럴 때는 바람을 쐬라고 가르친다. 다른 사물을 보라고 가르친다. 새롭게 정립된다. 시인도 매화를 보면서 주역의 진정한 이치를 깨달았을 것으로 보인다. 세 획이 처음 이루어져 온갖 변화 거기 있
암만해도 봄은 좋은 계절이다. 새 생명들이 싹을, 생명이 약동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기 때문이다. 묵었던 때를 깨끗이 씻고 새로움이란 선물을 지구상에 주기 때문이다. 연약한 자들이 훌훌 털고 추위 때문에 움츠렸던 어깨를 펼 수 있기 때문이다. 봄 경치는 짓궂은 것을 모두 쓸어버리고 새로움을 간직하는 것이 새로운 봄이다. 임 그리는 마음에 밤에 잠들 수가 없
시인은 부지런하고 치밀한 성격으로 공정한 정치를 했고 박학다식했다. 한편으로 아첨하며 자기 공을 자랑한다는 비방도 들었으니 양면성을 갖추었기도 했다. 경사經史와 전고典故에 통달한 뛰어난 문장가였고 민요와 설화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알려진다. 병들어 있으면서 못다 끝낸 시 한 수쯤은 선뜻 완성했으리. 가는 풀 그윽한 향기 찾기 어려운 곳에는, 엷은 연기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