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루정'에서 바라보는 '대미산'은 한 폭의 동양화다. 바위사이로 청정한 소나무가 눈(雪)에 반해 더욱 푸르다. 이번 기행에서 '대미산'이라고 부른 것은 홍천읍지에 명기된 지명을 따른 것일 뿐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목산'이니 '성묵산'이라고 부른다. 대미산을 둘러쌓은 산성은 아직도 자취가 선명하다. 일명 '대미산성'이다. 그러나
속초는 '속새울'에서 비롯되었다. 비록 산골짜기의 고을이지만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의 형상이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하여 예로부터 속새울의 앞산을 '와우산(臥牛山)'이라고 불렀다. '와우산'은 '속새울'과 '느릅나무정'에 걸쳐 누워있는 한 마리 소다. 배불리 속을 채우고 누워있는 소다. '노천'에 '비룡산'이 있다면 '속새울'에
눈이 많이 내렸다. 유난히 자주 많이 내렸다. 갑자기 내린 폭설이라 며칠 동안 꼼짝없이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신문을 뒤적거리다보니 올해의 사자성어가 눈에 들어왔다. 康衢煙月(강구연월)-`번화한 거리에 달빛이 연기에 은은하게 비치는 모습을 나타낸 말로, 태평성대의 풍요로운 풍경을 묘사할 때 쓰인다. 이 말은 중국 요 임금 시대에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노래한
2010 경인년(庚寅年)은 60년만에 돌아온 호랑이띠로 백호에 해당한다고 한다. 경인년의 경(庚)이 색상으로는 백색을 뜻하고, 인(寅)은 호랑이를 의미한다. 백호(白虎)해는 상서롭고 좋다는 의미로 통설된다. 역학적으로 경인년은 큰 변화와 충돌을 의미하는 해다. 경(庚)은 강하게 응결하는 금(金)의 기운을,인(寅)은 나무(木)처럼 지면을 뚫고 성장을 시작하려
‘개운(開雲)’ 구름을 열어 제치고 펼쳐진 마을이라는 뜻일까? 넓은 뜰을 가진 마을이다. ‘만대저수지’에서 바라보는 개운뜰의 저녁풍경은 한폭의 풍경화다. 그 뜰은 개운 ‘돌모루’를 지나 삼현 ‘무네미’를 거쳐 성전 ‘자패’에 이르기까지 지평선을 이룬다. 너른 뜰을 가졌기에 공작산에서 오음산에 걸쳐있던 구름도 이곳에선 개운(開雲)하였으리라. ‘개운’은 후동과
‘만대산(萬垈山)’- 산속의 산이다. 산을 넘고 또 산을 찾아가야 만나는 산이다. 산이 산을 불러 산이라 부른다. ‘오음산’, ‘공작산’, ‘대학산’이 밖으로 둘러서고, ‘비룡산(덕구산)’, ‘응곡산’, ‘먹방산’이 안으로 감싸 안은 산이 ‘만대산’이다. 산속에 갇힌 순한 짐승 같은 산이다. 만대산은 둘이다. 하나는 횡성군 공근면의 ‘만대산(630m)’ 이
‘오음산’은 절로 이름이 붙여진 게 아니다. 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공주터’에서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신현철씨(74, 월운리 공주터)는 오음산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신현철씨가 직접 들은 오음산의 울음소리는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일 년 전이었다고 한다. 이른 아침이었는데 박무가 약간 낀 바람도 없는 날이었다고 한다. 아침 열시쯤 이었다
안개가 깊다. 정오가 되도록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 겨울 안개 속을 나서는 길은 신생의 빛으로 가득하다. 나뭇가지마다 눈꽃을 피운다. 올겨울 들어 자주 보는 겨울 풍경이다. 며칠 전에 찾아뵙겠다고 전화를 드렸던 월운 ‘공주터’ 신현철(74.월운리 공주터)씨 댁을 찾았다.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려 좀 늦게 ‘오룡터널’을 지나 ‘자패(재앞)’를 지나니 ‘오음산’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 ‘오음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다. 산이 간직한 소리일까? 봉우리마다 가지고 있는 저 소리를 들으며 ‘오음산’에 오른다. 오음육률(五音六律)이다. 초겨울의 산행은 이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몸을 맡긴다. 산은 늘 거기에 있고 나는 산 속으로 들어간다. 마음을 열고 듣는 소리의 깊이가 오음육률 아니겠는가? 산
(주)대명레저산업의 9번째 신화, 소노펠리체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오직 VVIP만을 위한 고품격 서비스드 레지던스 소노펠리체가 12월9일 500여 명의 내·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소노펠리체 건축 경과보고 및 환영사, 축사, 현장투어와 오찬을 진행으로 성공적인 개관식을 거행했다. 3년여간의 땀흘린 노력에 대명리조트 회원들의 뜨거운 성원이 더해진 소노펠리체
수타사 주차장 주변은 상가를 이루고 있다. 민박이며 음식점 등 여느 유원지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특색 있는 음식을 꼽으라면 콩 음식과 민물 매운탕을 꼽을 수 있다. 잘 알려진 콩 음식은 순두부, 초두부, 모두부 등 두부와 두부를 들기름에 지진 두부구이 새우젓으로 간을 한 두부찌개, 콩자반, 콩물국수, 청국장, 비지장, 갈아서 마시는 두유, 콩떡, 콩고물,
아침 열시, 해피존 친구들과 약속한 공부방으로 갔다. 모자에 장갑을 끼고 중무장한 모습이 귀엽다. ‘1318 해피존 초록세상’은 홍천군새마을지회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지역아동센터로 13-18세의 청소년들이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자신의 공간을 찾아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작은 사회를 이루고 사랑을 주고받는 따듯한 곳이다. 해피
‘약수봉(약물산)’을 오른다. 공작산의 능선이 뻗어내려 ‘수리봉’을 이루고 다시 한 구비 솟아올라 ‘약물산’을 이루었다. 공작산 산행의 주능선이면서 ‘화양강’과 ‘수타계곡(덕치천)’을 굽어보며 자태를 뽐내는 요조숙녀 같은 산이다. ‘약수봉(약물산)’은 약물이 나오는 산이라는 뜻이다. 산 여기저기 곳곳에 약물샘이 있다. 약수봉(약물산)의 약수 중 가장 효험이
立冬(입동)양력 11월 7∼8일경으로, 상강(霜降) 후 약 15일, 소설(小雪) 전 약 15일에 해당한다. 음력으로 10월 절기이다. 이날부터 겨울이라는 뜻에서 입동이라 부르고, 동양에서는 입동 후 3개월(음력 10∼12월)을 ‘겨울’이라고 한다. 늦가을을 지나 낙엽이 쌓이고 찬바람이 분다. 김장 시기는 입동 전후 1주일간이 적당하다고 전해
길이 강을 따라 오고, 또 강이 길을 따라 오기도 하는 동면 영귀미길.오룡터널이 뚫리기 전까지만 해도 왜 그리 멀어 보이는지 읍내 한번 나가려면 하루 일이었는데 지금은 10분 거리의 이웃 마을이 되었다. 동면(영귀미면)은 고려 현종9년(1018년)에 홍천현에 예속됐던 지역이었고, 조선 고종32년(1895년)에 홍천군 영귀미면(詠歸美面)이라 불리었는데, 속초
다시 자전거를 타고 ‘결운리’로 달렸다. 안개가 깊다. 옛 44번 국도.‘대기고개’를 넘어 신행정타운이 들어선 경찰서 앞을 지나고, 종합운동장 어귀를 지나 ‘여내골’ 다리를 건너 ‘국립농산물검역소’를 지나 ‘홍천농업기술센터’ 앞에서 내렸다. ‘여내골’을 경계로 ‘태학리’와 ‘결운리’가 마을을 달리한다. ‘홍천 농업기술센터’가 이곳으로 이전하기 전에는 포도원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 안개가 자욱했다. ‘화양교’를 건너 강둑으로 접어들어 ‘검율리’쪽으로 달렸다. 안개 속에서 모든 것이 희미해진다. 희미한 시야 너머로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 밭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농사일 가운데 안개가 걷히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콩 베기, 들깨 베기다. 안개가 걷히고 해가 나면 콩 꼬투리가 말
‘구성포’의 아홉 꾸미는 물오른 단풍으로 붉다. 개울을 따라 걷는 좁은 오솔길에도 가을이 깊다. 강을 따라 이어지던 길은 풀숲으로 우거졌고 오랜 기억처럼 풀벌레가 크게 운다. 그런 길을 찾아가는 여정은 색다른 묘미가 있다.마차나 달구지를 끌고 가던 시절의 느긋함이 묻어난다. 흐르는 물처럼 또는 소처럼 길을 가는 사람들의 하루해는 길고 또 멀고, 세월 또한
길을 걷는 것이 배우는 일이다. 길을 걸으면서 이 말이 실감난다. 산굽이를 돌고 또 물굽이를 돌아 어느덧 노을 붉은 강가를 지날 때면 무심하게 지나온 길들이 어제 일처럼 떠오르는 것이다. ‘풍천리’ 길이 그렇다. 한 달 가까이 골골이 찾아다닌 것이다. 골짜기의 물소리에 취하기도 하고 골짜기의 나무향기에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골짜기로 이어지는 길에 취해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