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高山도 쉬어가고, 유수流水도 쉬어가라는 뜻을 담더니만, 이젠 명월明月과 청풍淸風에게도 잠시 쉬어가라는 부탁을 한다. [밝은 달 자네는 수 만년을 떠돌면서 지구를 비췄으니 어지간히 피곤하겠네]라고 했을 것이고, [청풍 자네도 참으로 피곤하겠네. 대밭에서 쉬어 가든지 사우정에서 잠시 쉬어 가시게]라는 시상으로 감흥을 얻었으리. 젊음은 몇 때나 지탱할 수 있을 것인가 / 근심에 잠겨보니 사람이 늙어간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感興(감흥)[2] / 교산 허균젊음은 언제나 근심에 늙어가고어찌하면 죽지 않는 약을 얻어서 난새를
문경에 가면 사우정이 있다. 고산高山 유수流水 명월明月 청풍淸風이 떠돌다가 이 정자에 잠시 머물렀다가 떠난다는 뜻이겠다. 모두 의인화 시켰다. 시인 묵객들은 우뚝 선 높은 산은 그 웅장함을 자랑하면서 떡 버티고 섰으니 얼마나 피곤할까를 생각했을 것이다. 흐르는 물은 쉬었다가 갔으면 좋으련만 마냥 바빠서 흐른다는 감흥이리. 밤중에 일어나 사방을 두루 들러보니, 뭇별들이 맑게 갠 하늘에 곱기도 하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感興(감흥)[1] / 교산 허균밤중에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니별들이 갠 하늘에 곱기도 하여라바다에 눈 같은
진도에 벽파정碧波亭만 있는 것은 아니었단다. 가볍게 파도 이는 물가에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기는 것이 우리 선인들의 풍류였다. 그래서 흔히 벽파정碧波亭 혹은 벽정碧亭이라 했다. 시원한 바람이며 물결을 타고 펼쳐지는 풍경은 보기만 해도 시원함을 더했다. 친지나 동료들과 함께 앉아 즐기는 풍류는 그 무엇에 비교되지 않았으리. 새벽달 공허하게 한 그림자를 거느린데, 국화와 단풍이 바야흐로 정을 머금는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碧亭待人(벽정대인) / 소재 노수신새벽달이 공허하게 그림자 거느리고국화 단풍 바야흐로 정을 가득 머금
봄이 되면 춘첩을 써서 붙였다. 입춘이 되면 대문이나 대들보, 기둥, 천장 등에 좋은 글귀를 써서 붙였다. 입춘첩 또는 춘첩자, 춘축이다. 많이 쓰이는 글귀가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다.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壽如山富如海] 등도 있다. 한가하고 바쁘거나 분수를 따르고 또 편안하게 살았는데, 늙은 어부는 봄 강물이 따뜻해졌다고 알리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夢賚亭春帖(몽뢰정춘첩) / 임당 정유길먼저의 임금 때에 머리 흰 노판서한망(閒忙) 때 분수 맞
나이가 들어가면서 발자취의 흔적을 남겨보려고 한다. 글을 써서 문집으로 엮어 보려고도 했고, 커다란 저택을 지어 자손들에게 남겨주려고도 했다. 그렇지만 암만해도 옥저玉箸를 다듬어 친지나 후진들에게 남겨주는 것은 많은 보람이 되었음이 선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보다 훤해진다. 후진 문집의 서문이나 발문으로 남긴 자국이 커 보인다. 오기는 어느 곳으로부터 왔다가, 떠나가기는 어느 곳으로 향해 가는 것인가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題冲庵詩卷(제충암시권) / 하서 김인후오기는 어느 곳에 가기는 어디 향해가고 오는 정해진 길
남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여자의 심리는 더 했던 모양이다. 남자에게 어리광도 부려보고 귀염도 토해보고 어딘가 의지해 보고 싶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겠다. 이런 심리는 나이의 고하를 떠나서 모든 사람들에게 두루 통하는 말일 수도 있다. 어린이는 어른에게 나이든 사람은 젊은이들에게 의지하거나 어리광을 부린다. 버들 숲 강 머리에 임이 오시나 말울음 소리 들리고, 반쯤 깨인 듯이 취한 얼굴로 다락 앞에 내리시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漫興贈郞(만흥증랑) / 이옥봉버들 숲 강 머리에 님 오시나 말울음반쯤 깨인 취한 얼굴
만년에 지리산 자락에 산천재를 짓고 학문을 성숙시켰기에 지리산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남달랐다. [지리산頭流山 양단수兩端水를 예 듣고 이제 보니 /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어라 / 아희야 무릉武陵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라고 했다. 지리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있다. 한글 시조 뿐이랴. 청컨대 천석들이 저 종을 한번 보시게, 크게 두드리지 않는다면 소리가 없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智異山(지리산) / 남명 조식청컨대 천석들이 저 종을 보게나크게 안 두드리면 소리가 없다는데두류
교육의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장실습이다. 코끼리를 공부하려면 실물이 있는 현장에 가서 어루 만져보고 이해시키는 가운데 확실한 교육이 되었다. 그런 곳에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서 학습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2차원적인 학습의 변화일 수도 있고 대리만족(?)이 될 수도 있다. 교육은 늘 그랬다. 소나기 내려 저물녘 벼랑에는 폭포수가 걸려있고, 시인의 힘찬 필력으로 그 기운을 무지개로 그렸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華山瀑布圖(화산폭포도) / 석천 임억령폭포에 소나기 내려 백룡이 걸리고시인의 힘찬 필력 무지
북한의 관리 지역인 개풍군 성거산 자락에 자리한 의상암은 수도하기에 적당했던 산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승이신 의상대사義湘大師와 연관을 지어보지만 흔적을 찾을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상]이란 한자도 다르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의상암은 풍치의 아름다움은 그저 그만이었던 것 같다. 수도를 하기에 적절했으리니. 구름 걷힌 푸른 바다가 한 눈에는 끝이 없으니 서른여섯 봉우리에 가을밤 달이 솟아오르니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義相蓭(의상암) / 복재 기준높은 누대 우뚝 솟아 안개 속에 들었고구름 걷힌 푸른 바다 한 눈에 끝없는데
우리의 명산은 암만해도 금강이 제일이었던 것 같다. 봄에는 온 산이 새싹과 꽃에 뒤덮이므로 [금강金剛]이라, 여름에는 봉우리와 계곡에 녹음이 깔리므로 [봉래蓬萊]라 했다, 가을에는 일만 이천 봉이 단풍으로 곱게 물드니 [풍악風樂]이고, 겨울이 되어 나뭇잎이 지고 나면 암석만이 앙상한 뼈처럼 드러나므로 [개골皆骨]이란다. 정양사 찬비 속에 향을 사르는 기나 긴 밤에, 거원이 바야흐로 사십년의 잘못을 깨달았음을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遊楓嶽(유풍악) / 호음 정사룡금강산 일만 이천 봉 대강 보고 오는데떨어지는 노란 잎이 나그
봄은 늘 생생한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다. 용솟음치는 향기를 은은하게 맡는다. 따스한 양지는 소곤거리는 싹들이 봄소식과 몸을 부딪치려는 자기 소회에 찬 나머지 희망의 열쇠를 한 움큼 쥐게 된다. 그렇지만 가을은 봄의 ‘열어봄’이란 생각보다는 가을의 ‘닫음’이란 폐장閉藏을 먼지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추회를 생각했을 것이다. 싹싹 오동나무 가지는 흔들고, 하늘은 푸르디푸른데 천천히 기러기가 날아간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秋恨(추한) / 양사기 소실가을바람 솔 솔 솔 오동가지 흔들고기러기는 푸른 하늘에 천천히 나는데사람
‘성리학자’였기 때문이었을까? 생각 무더기는 성리학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존양存養’이란 양지에 목을 매는 섣부른 모습(?)도 본다. 하늘과 땅이란 철학적인 밑뿌리에 생각 주머니를 의지시키더니만 성리학에 그 이상을 접근하지 못하거나, 이기이원론이란 독실한 성리학을 생각하더니만 심리학적 이상을 뛰어 넘지 못한다. 소소한 산비가 내리니 절로 꿈을 깨고 보니, 창 밖에는 문득 꿩이 우는 소리가 멀리서 들린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存養(존양) / 회재 이언적소소한 산비에 절로 꿈을 깨어 보니창 밖에 꿩 우는 소리 나직이
무제無題랄지 우음偶吟이랄지 아예 처음부터 시제를 붙이지 않고 시를 짓는 수가 많았다. 사람의 생각은 다양하면서도 자기가 생각하는 것 이상을 뛰어 넘지는 못하는 수가 많다.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는 사람은 자동차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달지, 철학자는 인간과 윤리적인 철학적인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행위와 생각을 한다. 눈에는 발을 내리고 귀에는 문을 닫았으나, 솔바람 개울물 소리도 소란하기만 하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無題(무제) / 화담 서경덕눈에는 발 내리고 귀에는 문 닫아솔바람 개울 소리 소란하기 그지없고말 잊고
의인법擬人法 혹은 의물법擬物法도 생각하게 된다. 동물을 사람으로 치환시켜 사상과 감정이 있는 것처럼 작품 속에 등장시키는 것이다. 무생물체를 생명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여 사랑하고 안아 주며 귀여워해 주는 그런 생각이다. 시인도 그림 속에 들어 있는 기러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해 저문 물가에 외로운 기러기 그림자가 보이고, 강 언덕엔 어둑한데 아직도 남아 있는 붉은 여뀌 꽃들이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題畵雁帖(제화안첩) / 양곡 소세양해 저문 물가에 외로운 기러기강 언덕 어둑한데 붉은 여뀌 꽃옛 친구
선현들의 시문을 보면 임금을 향한 일편단심이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귀양 가 있으면서도 임금을 원망하거나 ‘네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이른 바 [성은]으로 생각했다. 요즈음 우리의 뇌리에 많아 사라졌지만 [충효례忠孝禮]를 생각한다. 국가적 입장에서 나라에 충성하고 가정적인 입장에서 부모에 효도하는 정신이 그것이다. 은휴와 은일은 서로 뜻이야 같겠지만 아우는 동쪽 고을에, 형은 서쪽 고을에 살고 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稽首向瀛蓬(계수향영봉) / 사재 김정국은휴와 은일은 서로가 뜻이 같고아우는 서쪽 고을 동생은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를 보면 매우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나온다. 지금 담을 쌓은 벽돌의 원형인 불럭을 만들어 담을 쌓은 장면을 한문으로 소상하게 설명했다. 당시 조선에서는 흙을 한 줄로 놓고 돌을 놓아가는 흙돌담이 있었다. 산울타리보다 더 선호했다. 이 울담을 헐어 내고 중국에서 보았다는 벽돌을 놓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만상은 이 좋은 계절에 많이 놀라고, 세월은 병든 얼굴 속으로 점점 파고들고 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天途中(조천도중)[2] / 월사 이정구만상은 좋은 계절에 놀라고세월은 병든 얼굴 파고드는데시작에
명나라를 대국으로 섬겼던 조선에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사신을 보내서 두 나라의 관계를 매우 돈독하게 했다. 이런 관계가 문물을 교환하는 수단으로 작용하여 외국 문화가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압록강을 건너 육로로 가서 북경으로 들어가는 길이 우선이었지만, 서경인 대동강에서 중국으로 들어가는 뱃길도 이용했다. 낡은 주점이 서쪽 언덕에 간신히도 붙어 있고, 강에 걸친 다리에는 수양버들 물에 비친다고 하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朝天途中(조천도중)[1] / 월사 이정구 주점이 서쪽 언덕에 간신히 붙어 있고강에 걸친 다리에는 수
별장이나 정자에 앉아 시를 음영하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었다. 어느 웃어른이 운자를 내면 그 운자로 시를 짓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어느 분이 지은 시를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운자는 몰론 시상이란 바탕에 따라 짓는 차운시가 있었다. 차운시를 또 차운하는 차운시도 있어서 시 짓는 우리네 풍습을 엿볼 수 있다. 강 따라 난 길에 불 밝고 개 짖는 소리 들리니, 작은 아이 와서 주인이 돌아온다고 알린다 하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鏡浦別墅次韻(경포별서차운) /기재 신광한물가에 있는 마을 해 저물어 가는데저녁 이슬 내리어서 옷
궁녀의 직업은 천한 쪽으로 분류된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가정을 둘 수도 없었다. 나인 내시들과 그 아래 하역을 맡은 무수리(水賜)·각심이(방아이)·방자(房子)·의녀(醫女)·손님이라 불리는 여인들이다. 그러나 보통 궁녀라 하면 상궁(尙宮)과 나인으로 분류되는 인구의 여인이다. 시인은 궁녀의 죽음 소식을 들었던 모양이다. 궁궐 문 깊이 잠기고 달이 뜨는 황혼인데, 열두 번 친 종소리가 밤에 이르러 소리가 분명하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挽宮媛(만궁원) / 안분당 이희보궁궐 문 잠기우고 달뜨는 황혼인데열두 번 종소리가
요즈음 당직이라고 하는 숙직제도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른바 업체에서 숙직 업무를 대행해 주고 있다. 불과 3~40년 전만 하더라도 숙직제도가 철저했고, 사고라도 나면 당직이 그 책임을 다했다. 엄격하게 근무지를 지키는 공무의 책임이었다. 아마도 시인은 반가운 중추절 날 숙직 업무를 맡았던 모양이다. 마음 편치 못했으리. 미울 손 추녀 끝에 저 오동나무 끝에는, 맑은 빛을 가로막아서 처마를 못 비춘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中秋直宿玉堂(중추직숙옥당) / 삼괴당 신종호가늘게 옥잔 잡아 달을 기다리려니찬 밤 성긴 주렴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