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을 깨고 낚시하는 모습을 본다. 심지어는 두껍게 언 얼음을 깨고 얼음 위에 앉아서 낚시하는 강태공들을 만나서 겨울 스포츠, 때로는 겨울 레저용으로는 적당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선현들이 살았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해저에서 잠만 자기엔 답답했던지 얼음장 밑을 후비고 다니는 고기를 낚기에는 좋았던 모양이다. 눈 속에서도 봄은 오히려 춥지 않는데,
자식이 멀리 떠나 있으면 매사가 근심이 된다. 자나 깨나 자식 안부 걱정에 여념이 없다. 아버지 쪽보다는 어머니 쪽에서는 강한 모성애母性愛 때문에 그 도는 훨씬 더했다. 하는 일은 잘하고 있는지, 옷가지는 춥거나 덥지는 않은 것인지, 숙식宿食에 불편함은 없는 것인지 잡다한 생각의 덩치들이 얽히어 걱정과 염려를 한다. 집 떠난 아들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못하니
농사를 잘 지어 풍년이 돌아오면 여기저기서 농부들은 풍년가를 불렀다. 오랜 옛날에는 이런 풍년가를 죽지가竹枝歌라고 했으니 논둑을 빙빙 돌면서 부는 풍년가와는 그 격을 달리했다. 고기를 많이 잡아 입항하는 배에서는 풍어가도 불렀을 것이다. 그물을 넣을 때마다 한 통씩 잡아당겨 만선滿船 어부의 마음은 가족의 기쁨을 생각하면서 즐거워했다. 그물을 훑으니 고기떼가
시대의 변화를 초월하여 많은 선현들은 매화를 좋아했다. 고고한 자태는 몰론 새봄을 알리는 전령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화의 자태를 뒤이어 뽐내는 동생들은 많다. 매화가 으스스 뽐내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개나리와 진달래가 제 모습을 자랑하더니만, 산수유가 손 내어 저으며 봄을 요동치게 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옥을 새겨서 사람이 입을 옷을 만들고,
연탄燕灘은 고려수도 송도와 평양 사이에 있는 작은 군郡이지만 수도를 넘보지 못하도록 길목에서 버티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시인은 달가의 신임을 받아 요충지인 연탄을 지키는 문신이었을 알게 한다. 자연을 음영하는 시적인 흐름이지만, 절절히 달가의 인격과 학문을 존경하는 시상이 묻어 있어 그 정한을 더하는 모습을 그린다. 강가 봄물은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데,
요즘처럼 교통이 발달한 시대와 비교할 수는 없다. 사대부들이었다면 말을 탈 수야 있었지만 아녀자들과 서민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걷는 것이 전부였다. 도보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시적상관자인 미암이 함북에 귀양을 가 있었으니 몇 달을 걸어 마천령을 넘고 있다. 유교적인 삼종지도 하나만을 가슴에 품고 먼 길을 달려왔다. 지친 걸음 어느덧 마천령(摩天嶺)일세 그
예나 이제나 국가의 안위는 튼튼한 외교에 있었음을 안다. 달가 포은은 덕망이 두터워 국내정치 및 사람을 적시적소에 쓰고, 사람 다루는 법이 능수능란했지만 외교에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수재였음을 알게 된다. 중국이면 중국, 일본이면 일본을 수없이 오가면서 외교의 역량을 폈다. 현실정치의 알찬 참여는 외교 역량에 있음을 보인다. 유세를 하느라 황금도 다 써
친우가 동래로 귀양을 가서 있는 처지에 요즈음으로 말하면 면회面會를 갔던 모양이다. 만리타향에서 귀양 온 자라는 핀잔 속에 사람 만나기조차 어려웠던 처지였으리니. 책이나 읽고 시나 지으며 세월을 낚고 있으렷다. 낮이면 조그마한 텃밭이라도 일구면서 달을 대하며 거문고를 타는 것도 하루의 일과는 되었을 것이다. 어찌 지금에도 종자기가 있다고 말하겠는가마는, 다
정주가 평안북도 남부해안에 자리 잡은 지역인 만큼 전쟁의 참화를 가장 많이 받았던 지역이 아니었는가 싶다. 가는 곳마다 전쟁이 남기고 간 흔적이요, 열려져 있는 것마다 흩어져 정비되지 못한 고을의 흔적을 볼 수 있어 지나는 과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것이 혼란스러운 고려 말 시대를 잘 반영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주관문 밖은 풀이 우거지
구월산은 황해도 신천군과 은율군에 걸쳐 있는 산이다. 구월산이라는 말은 이 산이 소재한 구문화현舊文化縣의 고구려 시대의 지명인 궁홀, 또는 궁올弓兀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하는데, 미화되어 구월산으로 되었단다. 옛날에 단군이 수도를 평양에 정하였다가 이곳 구월산에 옮기고 수 천 년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전한다. 작년 겨울 내린 눈이 아직도 산에 남아 있는데, 금년
김부식은 유학을 숭상한 보수파이고, 정지상은 노장사상에 경도된 개혁파였다. 두 사람은 시에 대한 경쟁심도 남달랐다. 관직을 비롯한 거의 모든 면에서 앞선다고 자부하는 김부식도 詩에서 만은 정지상보다 처졌다. 정지상이 쓴 琳宮梵語罷 天色浮瑠璃(절간에 독경 소리 끝나니, 하늘빛 유리처럼 맑아지네)를 보고 탐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해오라기 높이 날아 멀리 사라져
고려후기 최대의 라이벌 관계였다면 김부식과 정지상을 제일의 반열에 놓는다. 정지상은 시詩에 있어서 당대의 으뜸이었고, 김부식은 문文에 있어 으뜸이었다. 삼국사기와 같이 훌륭한 저서를 남겨 우리의 정사를 훤히 알게 했던 그였지만 시적인 재주는 정지상에 미치지 못했음이 문헌을 통해 속속 밝혀지고 있어 가슴이 섬뜩해진다. 속객의 발길 닿지 않는 곳이 있어서, 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다. 농업을 근본으로 한 나라에서 농사짓는 사람은 천하의 근본이란 뜻이다. 그럼에도 조선 사회에서는 농사짓는 자를 서민 혹은 상놈으로 여기는 경향이었다. 사대부들은 서민들이 농사지은 곡식을 축내고 농사짓는 자들을 착취했다. 이러한 때에 농사의 중요성을 강조해 주목된다. 권농사자(勸農使者)는 왜 이리도 늦게 오는지, 먼 숲
이별의 아쉬움은 마음속에 깊이 담아두고 다시 만날 훗날을 기약하기도 한다. 가달인 포은이 일본으로 사신을 떠나더니만, 강남인 중국에도 사신으로 다녔던 모양이다. 정을 담아내면 한 섬일 것이고, 마음을 담아낸다면 두 섬은 충분하게 되었을 것이려니. 이런 정성을 담아 친지를 보내고 떠난 사람을 기다렸을 것이다. 작년에는 서울에서 추석을 만나서 흥겨웠는데, 달빛
누구나 아름다운 고향은 있다. 고향에는 추억이 있고, 고향의 나무와 달빛은 너무 오래 타향에 있었다고 나는 반겨 껴안는다. 뛰어놀던 곳이 그대로인데 변한 건 사람들 모습이다. 더러는 저 세상으로 떠났고, 더러는 타향에서 산단다. 반은 단청이고 반은 시 같기도 하면서 읊조린 시인의 시제는 어쩌면 고향 여주를 다 말한다. 천지는 끝이 없지만 삶은 끝이 있다고
무더운 여름에 어름을 먹었던 것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서빙고 같은 시설이 있어 어름이 어는 계절에 어름을 모아두었다 필요한 여름에 꺼내서 사용하면 어름의 효능은 충분할 것으로 생각된다. 거기에는 찬 물만 넣어 얼리는 것보다는 감칠맛 나는 조미료를 넣어서 얼린다면 아이스케키나 크림 맛이 나겠다. 좋은 술은 침상머리에 놓아야 제 격인 것인데,
민간에 유행하던 노래를 한시로 채록하는 소학부 열한 수를 선사하셨던 시인께서 산 중에서 눈이 소복하게 내리는 밤을 맞이했던 모양이다. 온 세상이 하얀 소복을 입고 황제의 국상을 맞이하는 깊은 밤이었을 것이다. 시인이 걷기에 불편이 없도록 환하게 밝혀준 설야의 모습은 요즈음으로 말하면 전등을 방불케 했으리라. 종이 이불에 찬바람 일고 불등은 가물거리는데, 사
사대문 밖에 살던 노정승(老政丞)의 어느 날 저녁 한 때의 소묘 한 점을 그리고 있음을 알게 한다. 갈꽃의 그림도 그려보고 금 솥의 국도 끓이는 장면을 연상해 본다. 세심한 노 정승의 오후 한 때의 부산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낚싯대를 부여잡고 강태공의 뒤꽁무니를 따르고 있는 형국이란 시상의 멋이 은은하게 배어나온다. 곧바로 금 솥에 국을 끓이던 그 솜씨
육안으로 보기에는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백구를 바라보면 한가하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그는 먹잇감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가한 백구는 인간에게 많은 것을 가르친다.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니 그 때를 기다리면서 차분하게 자기를 개척하라고 가르친다. 주살은 원래 너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만경창파
부산하기만 하던 청사廳舍의 조용한 휴일 오후였던 모양이다. 할 일도 없고 고향 생각도 나고 친구들의 얼굴도 스친다. 그것은 꿈속에서 중얼거렸던 한바탕 상상이었다. 그래도 무심한 졸음이 시인 곁을 지켜가면서 고운 꿈결에서 신나는 장면을 보라고 재촉한다. 모두가 퇴청하고 없는 청사는 더없이 한가롭기 그지없었음을 보인다. 성긴 발을 반쯤 걷고 층층인 산을 향하니